가끔은 내가 관제석에 앉아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더해서는 내가 사는 이유라든지.
특히 요즘처럼 교통이 줄어 맡은 시간 동안 한 마디도 못하고 관제석에서 내려오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래도 나름 조금 비행기가 늘었다고 겨우 몇 마디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긴 하지만. 비행장 관제사로서, 그 안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을 맡고 있는 관제를 하는 사람으로서 내 존재 이유는 뭘까. 그냥 앉아서 시간이나 때우라고 있는 직업은 아닐 테니까. 작년 이맘때에는 더 나아가서 '도대체 나는 왜 사는 걸까'라는 보다 진지하고 심도 있는 인생 고민을 했지만 그건 잠시 제쳐두고. 그래서 왜 관제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고민을 해 봤는데 결국에는 비정상 상황 때문이다. 동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든지, 착륙해야 하는데 랜딩기어가 내려와 있지 않다든지 하는 류의 항공기가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비상 상황에서는 바깥에서 항공기를 쳐다보고 있는 내 역할이 중요해진다.
훈련관제사로서의 직무 교육을 받을 때 우리는 각종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줄줄 외워야 한다. 가볍게는 사용 중인 장비의 고장부터, 무거운 상황으로 가면 항공기 자체에 문제가 생겼거나 활주로나 유도로 위에서 스스로 이동이 불가할 때 관제사로서 곧바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배운다.
작년에는 인천공항에서 한 항공기가 이륙 포기(RTO)를 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날 나는 주간 근무일이었고 짜인 스케줄에 따라 교통량이 회복되었을 때를 대비한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한창 훈련 중인데 갑자기 조장님께 급하게 연락이 와 타워로 복귀해야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닌데, 생각하면서 동시에 핸드폰에 와 있는 문자를 확인했다. 이륙하던 항공기가 급히 제동을 걸어 이륙을 포기하고 활주로에 기동 불가 상태로 멈춰있다는 메시지였다. 급히 제동을 건 바람에 랜딩기어 바퀴가 16개나 파손되었고 연기가 발생해서 비상 상황으로 간주되어 공항소방대가 출동한 상태였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열심히 달리다가 이륙을 포기하는 상황은 그렇게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 내가 약 2년 동안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딱 한 번 마주했을 정도다. 그마저도 다른 곳에서 교육받다가 비상상황이 생긴 것을 전파받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소식을 듣고 불길이라도 번지면 안 될 텐데라는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잘 마무리되었고 항공안전장애로 보고되었다.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별표 20의 2
의무보고 대상 항공안전장애의 범위 중
나. 항공기가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이륙 활주를 중단한 경우 또는 이륙을 강행한 경우
1) 부적절한 기재, 외장 설정 2) 항공기 시스템 기능 장애 등 정비 요인 3) 항공교통관제지시, 기상 등 그 밖의 사유
이런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관제사는 교육을 받는다. 기동 불능 항공기를 처리하는 방법, 항공기 연료가 새서 유도로가 미끌미끌해졌을 때의 대처법, 무선 통신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대응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사람이다 보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떤 이론도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으니 그때 참고하라고 관제석 옆에 비상상황 대처 매뉴얼 북이 같이 놓여있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대비를 해 두지만 가끔은 관제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사고가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든다. 아무리 가르침을 받아도 스스로 준비가 안 되어있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관할구역에 비행기가 한 대도 없어도 우리는 반드시 관제석을 지켜야만 한다-는 결론이 났다. 실제로 우리 팀 선배 관제사 한 분이 계류장 근처 지역에서 연기가 발생하는 걸 직접 목격하고 신고했던 사례가 있었다. 관제사의 의무인 '항공기간 충돌 방지' 이외에도 공항 내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비정상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감시자 및 조력자 역할을 또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관제사로서의 임무가 아니어도 나는 내 주변사람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진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대체 왜 사는 걸까, 하는 고민은 잠깐 접어둬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