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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Dec 25. 2020

항공사와 브랜드 아이덴티티

알록달록한 항공기 도장과 제복 효과

문득 쳐다본 주황빛(JJA,7C) 노을 진 하늘(KAL,KE)에 날아가는 연두색 나비(JNA,LJ), 민트색(ASV,RS) 바닷길 따라 곱게 깔린 초원 위 빨강(TWB,TW/ESR,ZE) 파랑(ABL,BX)빛이 도는 색동(AAR,OZ)의 아름다운 꽃들!


우리나라 국적사들은 참 다양한 고유의 색을 브랜드 각인의 한 요소로서 활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색채와 문양을 고수하고 있는 두 개의 *FSC, 지역색이나 특이한 색을 선택하는 여러 LCC는 공항에서 각각의 비행기 **도장을 보는 눈의 즐거움마저 선사하곤 한다. 타워에서 내려다보면 신도장을 입은 특이한 색의 항공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simple is the best,라고 했던가. 원래의 기본 도장을 입고 있는 비행기들이 가장 classic하고 modern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판다 캐릭터를 그려 넣은 eva항공의 a330은 조금 유아틱한 느낌이 있기에.

*FSC(Full Service Carrier) : 대형 항공사. 저비용항공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뜻한다.

**도장 : 비행기가 입은 옷. 항공사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비행기 외부 표면에 그려 넣은 색색의 그림.


에바항공의 캐릭터 도장을 입은 A330


가끔 관제를 하다 보면, 지상 이동하는 항공기 중 새카만 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게 바로 뉴질랜드항공의 특별 도장기다. 뉴질랜드항공은 작년 11월 인천공항 직항 노선을 만들었다. 아니 저 까마귀같이 시꺼먼 건 뭐야, 하고 보면 견인을 당하고(?) 있는 뉴질랜드 항공의 올블랙 비행기다. 올블랙 슈트를 차려입은 것처럼 격식 있어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위엄 있어 보이기도 한다. 주황/파랑을 반반 칠해서 들어오는 KLM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다. 이렇게 비행기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항공사에 대한 이미지가 생기게 된다.


뉴질랜드항공 특별 도장. 세계 최초로 상업비행에 도입된 B789이다.


비행기를 알록달록 예쁘게 색칠하기도 하지만, 승무원의 복장 자체가 항공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사실 승객은 비행기에 탈 때, 내릴 때 외엔 비행기 외면에 신경 쓰기가 어려우니까. 실제로 항공사에서는 승무원 유니폼을 회사 브랜딩(branding)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하늘을 닮은 것 같은 대한항공의 시원스러운 하늘색 유니폼이 아주 예쁘고, 인천공항에는 취항하지 않지만 고급진 회색이 아름다운 하이난항공의 유니폼도 마음에 든다. 2021 팬톤 컬러가 노랑과 회색이라 하던데, 하이난항공 유니폼이 색채에 아주 잘 맞는 예쁜 유니폼을 가지고 있다.


하이난항공 유니폼. 도자기 같은 깨끗한 색상이 부드러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전에 진에어 승무원이 입던 연두색 셔츠와 청바지(JEAN)도 사실 톡톡 튀고 활동적인 이미지가 있어 좋았는데, 얼마 전 블랙 색상의 무난한 디자인으로 바뀌면서 세련된 이미지가 강해졌다. LCC이긴 LCC이지만, 계속 포화되어가는 저비용항공사 시장에서 고급화 전략을 사용하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청바지에 대한 승무원들의 불편사항, 승객의 문의를 반영하여 임직원 선택에 따라 새로운 유니폼을 선정했다고 한다. 나비 CI가 멋들어진 진에어 머리핀도 아주 예쁜데, 다른 항공사와 달리 진에어는 여승무원이 쪽머리를 하지 않고 포니테일을 한다는 점도 개성 있다. 그냥 이래저래 한 이유로 좋아하는 항공사라서 사실 뭘 해도 예뻐 보이는 것 같다. 비행기 탑승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항공사와 승무원 유니폼이 있을 것 같다.


신기하게도 1979년의 한 실험에 따르면, 유니폼은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도 심리적인 영향을 강하게 미친다. '제복 효과'라고 불리는 이 것은 여학생 60명에게 인종차별주의 집단인 KKK의 옷과 간호사복을 각각 입힌 후 문제를 낸 상대방이 틀린 답을 말하면 6단계의 버튼을 눌러 전기충격을 가하게 한 실험에서 비롯되었다. 예상했겠지만 KKK옷을 입고 있던 학생은 더 강한 수준의 전기충격을 상대에게 가했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항공사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도 소속감과 정체성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승무원을 보다 전문적이고 수려하게 보이도록 해 주는 유니폼은 항공기 도장과 마찬가지로 항공사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통합이라는 빅 이슈에, 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을 합치는 통합 LCC의 출범까지 거의 기정 사실화된 듯 하니 올해와 내년은 그야말로 항공산업에 방점을 찍는 특이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사라지지만 이 글에서도 살아 숨 쉬듯이 역사 속에는 영원히 남게 될 아시아나의 색동무늬, 진에어의 연두색 나비,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의 개성 있는 CI와 이미지는 두고두고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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