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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Feb 09. 2021

어릴 적 꿈대로 살고 있나요?

잠시 눈을 감고 중학생 때의 장래희망을 떠올려 보자. 상상력이 풍부해서 뭐든 되고 싶어하는 초등학생 때도 아니고, 현실에 치여 그저 책상에 앉아 기계처럼 공부하는 고등학생 때도 아닌, 딱 중학생 정도로. 그때의 꿈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얼마나 차이가 있나? 아마도 많은,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어린 날의 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또한 내가 그렇듯이.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나는 감히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왔다. 어느 정도였냐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mike는 ‘밀크’가 아니라 ‘마이크’로 읽는 거라는 걸 깨우친 정도? 영어 시간, 장래희망을 영어로 말해보라고 하면 외교관을 영어로 어떻게 부르는지 몰라 망설였던 기억이 창피하게 남아있다. 조기 교육 열풍에 힘입어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거나 유학을 보내는 그런 교육열에 불타는 집안과 우리 집은 거리가 멀었으니까. 역시나 환경 탓을 하면 비겁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특출나게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코피가 터지도록 노력한 것도 아니고, 적당히 수험생활을 했다. 아무 부끄러움 없이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그 ‘꿈’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거창했지만 억지로 하는 공부가 싫었다. 그렇게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영문을 모른 채로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목표를 찾은 덕분에 지금 무언가라도 되어있는 거라고 곱씹어본다.


사람의 인생을 사계절이라고 놓고 보면, 80세가 늦겨울일 때 지금의 나는 초여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벌써 꽃이 만발하는 시작의 봄은 다 가고 두 번째 계절이 왔건만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은 심심하지 않게 찾아오곤 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 그저 흐르는 강 위에 부유하는 나뭇잎 같은 인생을 살 것인가. 미래에 도전하는 삶, 강물의 결과는 완전히 반대로 맞서는 바람 같은 인생을 살 것인가.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다. 인생의 여름과 가을을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은 하던 일을 전부 그만두고 훌쩍 새로운 일을 시작하곤 하니까. 지금의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어릴 적 품고 있던 이루지 못한 그 꿈이 아쉬워서. 사랑도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절절하고 뭉클한 것처럼.


꽃이야 봄을 맞이하며 가장 여럿이 아름답게 피나, 여름에 피는 해바라기,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 겨울에 피는 동백도 누군들 잊지 못할 만큼 인생을 수려하게 추억하도록 해 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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