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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Aug 04. 2022

평생 가늠하지 못할 가장의 무게

아빠, 아빠에게.

엊그제 아침에는 퇴근을 하고 친구를 만나러 전에 살던 동네로 향했다. 해가 쨍-하고 날이 뜨거운 게, 아무리 날이 더워도 쉬는 날에는 산으로 들로 쏘다니는 아빠도 후덥지근하게 날씨와 싸우고 있을 법했다. 크게 살갑지 않은 성격 탓에 아빠에게 보통 먼저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먼저 걸려올 딸 전화를 기다릴 아빠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와 비슷하게 교대조 근무를 하는 아빠는 내가 아침 퇴근하는 날에는 휴일이었을 것이다. 또 땡볕 아래서 농사짓는다고 바쁜가 싶어 잠시 잊었더니 몇 시간 만에 다시 전화가 왔다. 음악을 배운다고 학원에 잠시 있었던 차라 이번엔 내가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학원을 마치고 아빠에게 다시 건 전화. 세 번째 시도에도 건너편에선 기계음만 들릴 뿐,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아빠의 음력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음력 생일은 계산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려우니 이제 좀 양력으로 챙기자고 해도 황소고집을 부리며 부모님이 정해주신 생일을 어떻게 함부로 바꾸냐고 싫어하던 아빠였다. 올해 아빠 생일을 늦게 계산한 내 탓이겠지만 하필 그날에 친구와 여행 약속을 잡아두었던 게 생각났다. 생일 파티는 이 날 말고 다른 날 해야겠다고 얘기하려고 이기적인 마음을 먹은 순간 - 아주 늦은 밤에 다시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 또 술 먹었구나!"

"웅~ 아빠 술 한 잔 하고 있지~"

"아빠, 쫌 있으면 아빠 생일이던데? 올 거지?"

"에이, 그런 거 안 챙겨도 돼."

"아니 그래도 올라와야지. 생일이니까."

"근데 말이야, 어제 아빠가-"


라고 생일 얘기는 휙 건너 띄고 운을 띄우는 게 심상치 않았다. 며칠 전 밤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바람에 공항 터미널에도 물이 잔뜩 새고 천둥번개가 시끄럽게 춤을 추던 밤에, 아빠가 일하던 현장에도 뭔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악천후 때문에 발생된 그 사건 속에서, 회사의 누군가에게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속상해 보였다. 내가 아는 우리 아빠는 다른 사람 흉은 절대 보지 않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사람에게 굉장히 실망한 듯했다. 오죽하면 높으신 분들에게까지 소리를 버럭 지르고 성을 냈다고 했을까. 그리고는,


"요즘 젊은 애들은 다 이런가 싶어." 하고 말하기에,

"아냐, 아빠. 젊은 거랑 상관없이 그 사람이 이상한 거야. 나였으면 안 그랬을 거야."

라고 MZ세대를 대변하기도 했다.


우리 딸이 이젠 회사도 다니고, 아빠 이야기도 다 이해해주는구나, 기특한 걸. 하며 넋두리가 30분쯤 이어졌을까. 아빠, 이제 너무 열심히 일 하지 마. 하는 내 말에는 그래도 회사에는 항상 성실하고 충실해야 한다며 다시 잔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아빠, 이제는 다들 그렇게 회사에 충성하지 않아."

"그래도 일은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


약아서 이제는 세상을 못 믿는 내가 보기에

우리 아빠는 아직도 너무 착하고 순진했다.


"이제 팀장이고, 무슨 장이고 다 내려놓기로 했어."

"잘 됐네. 이제 거기서 일 그만하고 올라와."

"나이 다 먹고 아예 모르는 곳으로 가면 짐이다, 짐."


끝까지 본인 하고 싶은 대로 살 사람이다.

고집쟁이 우리 아빠는.


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목구멍 아래에서 찝찝하게 울컥거리며 밀려오는 응어리 같은 것을 한참 삼켜야 했다. 한 회사에 벌써 30여 년을 몸 담은 아빠에게, 이 정도 일이 어디 한 두 번뿐이었을까? 참고 참다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렇게 하소연했을까 싶었다. 저기 멀리에서, 전화를 끊고는 혼자 쓸쓸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몇 분 후에 메시지 톡으로 아빠에게 이런 말을 보냈다.

"아빠, 사랑해"

앞으로도 내가 평생 가늠하지도 못할 삶의 무게를 잔뜩 이고 걸어온 아빠의 고통에 내가 잠시동안 나눈 마음의 응어리를 비할  없지만,   밖에는 보낼 말이 없었다고 글을 빌어 변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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