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하고 싶어서 가끔 뛰었지만 주기적으로 달리지는 않았다. 그냥 뭔가 답답한 느낌이 있을 때나 달리곤 했다. 특히 러닝 하기 좋은 계절인 봄이나 초가을에는 시원한 밤공기향을 맡으면 불쑥 공기를 헤집고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가끔 운동 어플을 따라 집 옆 공원길을 몇 키로 정도 뛰고 나면 마음이 개운해졌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불행하게도,
'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재작년부터인가, 20대 또래 사이에서 바디 프로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입사 후 5kg의 체지방을 얻고(아마 근육이 아니었을 것이다) 역대급 몸무게를 찍은 후 포동포동한 인간으로 지내던 나는, 노력으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어 바디 프로필을 찍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슬슬 회사에 적응도 좀 됐고, 밀린 숙제 같은 다이어트도 해결할 겸 체중 줄이기에 나서기로 했다. 물론 잘 되면 사진도 좀 찍어서 남겨볼 요량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근육을 키우기보다는 일단 몸에 달린 지방을 걷어내야 했다. 원푸드 다이어트나 연예인 식단같이 요요가 올 방법은 사용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나름 체중 감량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잘못된 다이어트 1 : 단식 예찬>
아직까지도 유행하는 식이요법인 간헐적 단식은 이제 누구나 한 번쯤은 미디어에서 접해봤을 법한 단어다. 나는 이 생소한 다이어트법을 공부하면서 단식을 예찬하기 시작했고, 48시간을 굶는 극단적인 단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인간이 굶으면 몸 안의 세포가 자가포식(autophagy)을 실행하는데, 이 자가포식이 세포 내 유해물질을 제거하여 건강에 매우 이롭다. 단식을 실행하는 경우 이 자가포식이 더 활발해진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만병통치세포(?)인 것처럼 과장하는 미디어 덕분에 나는 식이장애를 겪어야 했다. 아, 그럼 굶기만 해도 오토파지가 실행돼서 나는 더 건강해지고 게다가 살도 뺄 수 있겠구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리는 바람에 나는 가끔 20시간, 24시간, 더 길게는 48시간씩 굶고는 뿌듯해했다.
<잘못된 다이어트 2 : 간식 전부 끊기>
나는 단 걸 좋아한다. 내가 그때 얻은 5kg 중 4.9kg은 아마 과자나 빵으로 찐 살일 것이다. 근데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과자, 빵,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한 번에 전부 끊었다. 마치 먹으면 죽는 사람처럼 웬만하면 손대지 않았다.
<잘못된 다이어트 3 : 운동은 반드시, 하루에 2시간>
체중 감량을 시작하면서 운동 강박이 생겼다. 매일매일 먹은 칼로리와 운동해서 소모한 칼로리를 기록하는 어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뭔가 많이 먹은 날엔 반드시 운동으로 잉여 칼로리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보통은 야외에서 쉬지 않고 5km를 달린 후 5km를 더 걷고, 다시 돌아와서는 홈트레이닝을 하면서 또 한 시간 가량을 보냈다. 기구 없이 맨몸으로 운동한 덕에 근육이 별로 늘진 않았지만, 몸무게 숫자는 가속을 붙어 줄어들었다.
특히 억지로 러닝을 나갈 때엔 스스로 행복하다는 최면을 걸어야 했다. 아침에 퇴근하고 비몽사몽 한 상태로 공복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며 뜨거운 햇살 아래로 몸을 내몰았다. 문제는, 칼로리나 소요 시간같이 숫자에 집착하며 하는 러닝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싱그러운 녹색 잎들, 춤추는 꽃들, 지나가는 사람들, 모든 풍경이 색을 잃었다. 빠르게 변하는 휴대폰 속 달리기 시간과 현재 속도, 소모 칼로리만 컬러로 선명히 보였다.
세 가지 방법을 한꺼번에 모두 실천하고 나서 저체중이 될 수 있었지만, 살이 빠졌다는 기쁨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단식/절식, 운동강박의 대가로 폭식증을 얻어야 했으니까. 건강보다는 미용을 앞세워 다이어트를 한 대가가 혹독했다. 폭식증을 앓으면서는 더 이상 이렇게 몸을 학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들은 식이장애를 고치기 위해서는 다이어트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후로 모든 운동을 그만두고, 먹는 것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러닝과도 예외 없이 떨어져야 했다.
48시간씩 굶고, 10km씩 쉬지 않고 달리며 몸을 괴롭혔던 나는 이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