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달리기는 좀 합니다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 가끔 운동이라는 주제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운동은 좀 해? 무슨 운동을 해?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달리기를 좀 하는데, 그거 빼곤 다른 운동은 잘 못해요. 자신이 없어요.
겸손한 척 말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거다.
'달리기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인간은 장거리 달리기를 잘하기 위한 쪽으로 진화해왔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달려야 한다. 현대문명이 오기 전, 살기 위해서 또는 먹기 위해서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을 달려야만 했다.
내 조상 중에 유난히 뛰는 걸 좋아했던 누군가가 실재했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지진 않아서, 고작 반에서 일이등 정도 하는 수준에서 놀았지만, 흰 가루로 그은 출발선 앞에만 서면 언제나 심장이 콩닥거리며 설레는 기분에 휩싸였다. 탕-하는 뜀박질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가 들리기 몇 초 전엔 항상 흥분상태가 되곤 했다. 흙바람을 날리며 출발한 순간의 목표는 언제나 일등이었고, 덕분에 반대표 계주에는 단골로 등장했다.
어른이 되고부턴 이상하게 가끔 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일과가 끝난 후 해가 지고 밤공기가 시원해지면 바람이 맞고 싶었다. 어느 주말 저녁에는 문득, 신발을 운동화로 바꿔 신고는 무작정 달리러 집 앞 공원으로 향했다. 내 어플에 남아있는 최초의 달리기 기록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총 거리 3km, 평균 페이스 6분 22초.
숨을 헐떡일 때마다 폐에 바람이 들어차는 기분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산책로로 쓰기 위해 잘 다져놓은 말랑한 인도에 발을 부딪치는 느낌도 신선했다. 그때부터였나. 나는 러닝에 진심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