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속도 모르고 구름만 마냥 흐르네
전염병으로 모두의 일상생활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된지도 참 오래되었다. 매일같이 아침에 불어난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게 이제는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것 마냥 다들 익숙한가 보다. 일상적이지 못한 일상도 문제이지만 사실 먹고사는 문제가 내 삶의 분야에서는 더 크게 다가오는 듯싶다. 비행기가 그렇게나 줄었는데도 관제석을 지키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이것 참,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한다.
타워 창문 밖으로 보는 공항 풍경은 아직도 한적하다. 북새통이 따로 없던 영광스러운 과거가 한가한 공항 전경 위로 겹쳐 보이기엔 이제 기억에서도 달아나버렸다. 어딘가에 시선을 집중하고, 집중한 그 시선 밖으로 물체의 이동을 느껴본다. 아쉽게 비행기는 아니다. 회백색 구름만 사람 속도 모르고 물 흐르듯 지나간다. 공항의 교통들은 흐르지 못하고 고여있는데. 나도 염치없지만 저 하얀 뭉텅이도 참 눈치 없는 게 아닌가.
고인 것은 썩는다고 했다. 무섭게 공항 이동지역에 가득 고여있는 건 비행기와 각종 조업 장비들이다. 원격 주기장에서 터미널로 바쁘게 왔다 갔다 거리던 비행기도 굳이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 가끔은 지상조업사에서 항공기 위치는 이동시키지 않고 이쪽저쪽으로 잠깐 굴리기만 하겠다며 제자리에서의 움직임만을 요청한다. 비행기도 억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고장이 난단다. 1터미널의 A380 주기장 근처에는 콘크리트 사이로 파란 잡초가 무성히 자란다.
일주일 새 확진자가 다시 무섭게 늘고 있다. 겨우 중국 노선이 트여 국적사들이 기지개 좀 켜는가 싶었더니 다시 강제 동면에 들어가게 생겼다. 누구를 탓해야만 하나. 누구에게라도 화살을 돌리지 않으면 다들 견뎌할 수 없는 것 같다.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병을 미워해보자, 다시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 생각처럼 쉽진 않다.
공항의 입장에서도 유례가 없는 날들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 재미있다며 추천해준 베스트셀러를 겨우 읽어보는데 백 쪽이 채 되기도 전에 책 표지를 덮을 때의 그 지루한 느낌과 비슷하다. 책장은 이미 덮였는데 딱히 할 건 없다.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나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가만히 주파수를 지키는 이 시간들을 모아놓고 나중에 보면 '참, 그런 때도 있었지.' 하며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까. 책 표지를 열고 이런 부분도 있었어, 라며 숨겨둔 책갈피를 찾을 그 날이 오긴 할까. 이제 와선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관제실에 들어와선 우두커니 관제석 앞에 앉은 나를 보고, 얘 너 거기서 뭐하니, 라고 한다면 자신있게, 관제하는데요, 라고는 못하고, 그러게요, 해버릴 것만 같다. 뭐든지 무인으로 바뀌어가는 이 시대에서 과연 나는 기계보다 낫다고 자부할 수 있나. 내가 기계보다 잘하는 건 지금의 감정을 느끼고 써 내려가는 것뿐인가 한다. 이상하게도 전염병의 존재가 가장 큰 이곳에서 다시 또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