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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Aug 22. 2020

관제사는 비행기를 어떻게 부르나요?

영국항공의 별명은 SPEED BIRD랍니다.

항공교통관제업무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국적의 종사와 관제사가 무리없이 소통하기 위해서 국제표준어인 영어로 소통하게끔 되어있다. 그래서 관제업무를 할 때, 대한항공 121편을 KOREAN AIR 121[코리안에어 원 투 원]이라고 부른다. 이걸 각 항공사의 콜사인(call sign), 한국어로는 호출부호라고 한다. 호출부호라는 말이 좀 어려운 것 같아서 편하고 쉬운 말로 바꿔보자면, 항공사의 '관제용 별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국적사들은 대부분 항공사명과 콜사인이 일치한다. 관제사 입장에서는 외우기도, 기억하기도 편리해서 반갑다.


그런데 모든 항공사 이름을 길게 영어로 표시하면 쓰는 데에도, 보는 데에도 불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관제업무를 할 때에는 항공사 이름을 세 글자의 영문 알파벳으로 줄여서 표기한다. 이렇게 표기하는 방식을 ICAO 3 letter code라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대한항공을 KAL, 아시아나를 AAR이라고 쓴다. 우리가 보는 항공편 리스트나 각종 레이더 장비에는 항공사 이름이 3 letter code로 표기되고, 그 세 글자를 보면 우리는 그에 맞는 콜사인으로 항공편을 호출하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출발편 리스트에 'JNA123'라는 항공편이 표시된다면, 우리는 [진에어 원 투 쓰리]로 해당 비행기를 호출한다.


[인천공항에 정기편으로 취항하는 국적사] 2023.04 기준

대한항공(KOREAN AIR, KAL)

아시아나(ASIANA, AAR)

제주항공(JEJU AIR, JJA)

진에어(JIN AIR, JNA)

티웨이항공(TWAY, TWB)

이스타항공(EASTAR JET, ESR) *잠정 중단

에어부산(AIR BUSAN, ABL)

에어서울(AIR SEOUL, ASV)

에어인천(AIR INCHEON, AIH)

에어프레미아(AIR PREMIA, APZ)


SPEED BIRD! 멋져!


[고맙게도 이름과 콜사인이 일치하는 항공사]

KLM항공(KLM, KLM)

델타항공(DELTA, DAL)

루프트한자항공(LUFTHANSA, DLH)

베트남항공(VIETNAM, HVN)


[예쁘거나 특이한 콜사인을 가진 항공사]

영국항공(SPEED BIRD, BAW)

칭다오항공(SKY LEGEND, QDA)

아틀라스항공(GIANT, GTI)


인천공항에는 약 100개 정도의 항공사가 정기편으로 취항한다. 입사 후 호출부호와 ICAO의 세 글자 코드를 외우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다행히도 항공사와 코드, 호출부호가 비슷하게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콜사인과 사명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하나 예시를 들어보자면,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의 콜사인은 speed bird다. 그래서 영국항공 18편을 부를 때 관제사는 SPEED BIRD 18[스피드버드 원 에잇]이라고 말한다. 물론, 조종사도 본인을 그렇게 칭한다. 생각해보면 귀여운 별명이다. 하늘을 가르는 잽싼 새, 영국항공이 되는 거니까. 


영국항공이 잽싼 새가 된 이유에는 이런 스토리가 있다. 영국항공의 전신인 임페리얼 항공은 Lee Elliott이라는 디자이너에게 회사 로고 디자인을 맡겼다. 이 디자이너는 의뢰를 받고 임페리얼 항공에게 새 모양을 본뜬 심플한 로고를 만들어줬다. 그 로고를 'speed bird'라고 칭했고, 이 별명이 지금의 영국항공까지 이어져오면서 호출부호를 잽싼 새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별명들도 있지만, 부르기에 엄청 헷갈리는 콜사인도 있다.


[(나만) 헷갈리는 항공사]

에어로로직(GERMAN CARGO, BOX)

루프트한자화물항공(LUFTHANSA CARGO, GEC)

홍콩항공(BAUHINIA, CRK)


독일의 화물항공사인 에어로로직과 루프트한자 화물항공이 대표적이다. 두 항공사는 또 하필 여객기가 아니고 화물기라 화물계류장에서 비슷하게 출몰할 때가 많은데, 실제로 두 항공사의 콜사인을 착각해서 잘 못 부른 경험이 있다. 실제 교신에서는 아니고, 다른 좌석 근무자와 협의 전화를 하던 도중에 GEC라는 코드를 보고 ‘german cargo는요~’라고 해 버린 것이다. 다행히 전화받은 근무자가 용케 잘 알아듣고 고쳐주었다. ‘아~ lufthansa cargo요?’ 그리고 이어지는 뻘쭘함.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잠깐 방문하지 않다가 속속들이 다시 돌아오는 항공사가 늘었다. 오랜만에 리스트업 한 세 글자 코드를 보면 콜사인이 뭐였더라,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된다. 특히 코드와 콜사인이 아예 다른데 자주 오지 않는 경우는 더 그렇다. 내가 제일 헷갈리는 콜사인은 대표적으로 이거다. 코드는 CRK, 콜사인은 bauhinia를 쓰는 홍콩항공.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 출도착 리스트에서 세 글자 코드로 된 편명을 보고 콜사인을 부르는 것이 기본적이라서, 반대로 콜사인만 보고 세 글자 코드를 기억해내는 것도 어렵다. UAL을 보면 자동적으로 united가 떠오르지만 united를 보고 세 글자 코드를 생각해내려고 하면 뭐였더라.. 하는 그런 느낌.


[두 글자 코드와 세 글자 코드가 전혀 다른 항공사]

제주항공(JEJU AIR, JJA, 7C)

에어아시아엑스(XANADU, XAX, D7)

중국동방항공(CHINA EASTHERN, CES, MU)


관제업무에서는 ICAO  글자 코드 콜사인 사용이 기본이지만, 공항의 다른 부서와 여객들은 IATA  글자 코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끔 의사소통이   되는 문제도 발생하곤 한다. 특히 우리는 주기장을 배정해주는 팀과의 연락이 잦은 편인데, 그곳은  글자 코드로 업무를 진행하고, 우리는  글자 코드를 사용하는 데다가 콜사인으로 항공사를 불러대니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영국항공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영국항공이라고 하거나  글자 코드인 BA라고 말해야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스피드 버드라고 하면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다른 팀원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항공사의  글자 코드와  글자 코드를 모두 숙지하는  마음이 하다근데  글자 코드를 외우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글자 코드와 아예 다른 경우가 허다하고,  많은 항공사를  자리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힘드니까 이제는 숫자까지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 복잡하다. 제주항공의  글자 코드는 JJA,  글자 코드는 7C 것처럼.

관제사 약명에 대해  내려갔던  에서, 관제사는  자리 알파벳으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가끔 이게 항공사의  글자 코드와 겹쳐서 재미있기도 하다. 우리 관제소에는 에어서울(ASV, RS) 코드와 약명이 같은 관제사님이 계신다.  약명을  때마다 나는 에어서울이 떠오른다. 이런  그냥 소소한 재미인  같다. 이런 데서라도 재미를 느껴야 하는 상황인  같긴 하지만. 나도 약명 지을  국적사  글자 코드  참고할  그랬나. 진에어(JNA, LJ) 똑같이 LJ정도로 했으면 귀엽고 좋았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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