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항공의 별명은 SPEED BIRD랍니다.
항공교통관제업무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국적의 조종사와 관제사가 무리없이 소통하기 위해서 국제표준어인 영어로 소통하게끔 되어있다. 그래서 관제업무를 할 때, 대한항공 121편을 KOREAN AIR 121[코리안에어 원 투 원]이라고 부른다. 이걸 각 항공사의 콜사인(call sign), 한국어로는 호출부호라고 한다. 호출부호라는 말이 좀 어려운 것 같아서 편하고 쉬운 말로 바꿔보자면, 항공사의 '관제용 별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국적사들은 대부분 항공사명과 콜사인이 일치한다. 관제사 입장에서는 외우기도, 기억하기도 편리해서 반갑다.
그런데 모든 항공사 이름을 길게 영어로 표시하면 쓰는 데에도, 보는 데에도 불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관제업무를 할 때에는 항공사 이름을 세 글자의 영문 알파벳으로 줄여서 표기한다. 이렇게 표기하는 방식을 ICAO 3 letter code라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대한항공을 KAL, 아시아나를 AAR이라고 쓴다. 우리가 보는 항공편 리스트나 각종 레이더 장비에는 항공사 이름이 3 letter code로 표기되고, 그 세 글자를 보면 우리는 그에 맞는 콜사인으로 항공편을 호출하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출발편 리스트에 'JNA123'라는 항공편이 표시된다면, 우리는 [진에어 원 투 쓰리]로 해당 비행기를 호출한다.
[인천공항에 정기편으로 취항하는 국적사] 2023.04 기준
대한항공(KOREAN AIR, KAL)
아시아나(ASIANA, AAR)
제주항공(JEJU AIR, JJA)
진에어(JIN AIR, JNA)
티웨이항공(TWAY, TWB)
이스타항공(EASTAR JET, ESR) *잠정 중단
에어부산(AIR BUSAN, ABL)
에어서울(AIR SEOUL, ASV)
에어인천(AIR INCHEON, AIH)
에어프레미아(AIR PREMIA, APZ)
[고맙게도 이름과 콜사인이 일치하는 항공사]
KLM항공(KLM, KLM)
델타항공(DELTA, DAL)
루프트한자항공(LUFTHANSA, DLH)
베트남항공(VIETNAM, HVN)
[예쁘거나 특이한 콜사인을 가진 항공사]
영국항공(SPEED BIRD, BAW)
칭다오항공(SKY LEGEND, QDA)
아틀라스항공(GIANT, GTI)
인천공항에는 약 100개 정도의 항공사가 정기편으로 취항한다. 입사 후 호출부호와 ICAO의 세 글자 코드를 외우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다행히도 항공사와 코드, 호출부호가 비슷하게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콜사인과 사명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하나 예시를 들어보자면,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의 콜사인은 speed bird다. 그래서 영국항공 18편을 부를 때 관제사는 SPEED BIRD 18[스피드버드 원 에잇]이라고 말한다. 물론, 조종사도 본인을 그렇게 칭한다. 생각해보면 귀여운 별명이다. 하늘을 가르는 잽싼 새, 영국항공이 되는 거니까.
영국항공이 잽싼 새가 된 이유에는 이런 스토리가 있다. 영국항공의 전신인 임페리얼 항공은 Lee Elliott이라는 디자이너에게 회사 로고 디자인을 맡겼다. 이 디자이너는 의뢰를 받고 임페리얼 항공에게 새 모양을 본뜬 심플한 로고를 만들어줬다. 그 로고를 'speed bird'라고 칭했고, 이 별명이 지금의 영국항공까지 이어져오면서 호출부호를 잽싼 새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별명들도 있지만, 부르기에 엄청 헷갈리는 콜사인도 있다.
[(나만) 헷갈리는 항공사]
에어로로직(GERMAN CARGO, BOX)
루프트한자화물항공(LUFTHANSA CARGO, GEC)
홍콩항공(BAUHINIA, CRK)
독일의 화물항공사인 에어로로직과 루프트한자 화물항공이 대표적이다. 두 항공사는 또 하필 여객기가 아니고 화물기라 화물계류장에서 비슷하게 출몰할 때가 많은데, 실제로 두 항공사의 콜사인을 착각해서 잘 못 부른 경험이 있다. 실제 교신에서는 아니고, 다른 좌석 근무자와 협의 전화를 하던 도중에 GEC라는 코드를 보고 ‘german cargo는요~’라고 해 버린 것이다. 다행히 전화받은 근무자가 용케 잘 알아듣고 고쳐주었다. ‘아~ lufthansa cargo요?’ 그리고 이어지는 뻘쭘함.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잠깐 방문하지 않다가 속속들이 다시 돌아오는 항공사가 늘었다. 오랜만에 리스트업 한 세 글자 코드를 보면 콜사인이 뭐였더라,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된다. 특히 코드와 콜사인이 아예 다른데 자주 오지 않는 경우는 더 그렇다. 내가 제일 헷갈리는 콜사인은 대표적으로 이거다. 코드는 CRK, 콜사인은 bauhinia를 쓰는 홍콩항공.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 출도착 리스트에서 세 글자 코드로 된 편명을 보고 콜사인을 부르는 것이 기본적이라서, 반대로 콜사인만 보고 세 글자 코드를 기억해내는 것도 어렵다. UAL을 보면 자동적으로 united가 떠오르지만 united를 보고 세 글자 코드를 생각해내려고 하면 뭐였더라.. 하는 그런 느낌.
[두 글자 코드와 세 글자 코드가 전혀 다른 항공사]
제주항공(JEJU AIR, JJA, 7C)
에어아시아엑스(XANADU, XAX, D7)
중국동방항공(CHINA EASTHERN, CES, MU)
관제업무에서는 ICAO 세 글자 코드 콜사인 사용이 기본이지만, 공항의 다른 부서와 여객들은 IATA의 두 글자 코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끔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문제도 발생하곤 한다. 특히 우리는 주기장을 배정해주는 팀과의 연락이 잦은 편인데, 그곳은 두 글자 코드로 업무를 진행하고, 우리는 세 글자 코드를 사용하는 데다가 콜사인으로 항공사를 불러대니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영국항공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영국항공’이라고 하거나 두 글자 코드인 BA라고 말해야 다른 팀 사람들이 알아듣지, 스피드 버드라고 하면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다. 다른 팀원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항공사의 세 글자 코드와 두 글자 코드를 모두 숙지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근데 두 글자 코드를 외우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세 글자 코드와 아예 다른 경우가 허다하고, 그 많은 항공사를 두 자리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게 힘드니까 이제는 숫자까지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 복잡하다. 제주항공의 세 글자 코드는 JJA, 두 글자 코드는 7C인 것처럼.
관제사 약명에 대해 써 내려갔던 전 글에서, 관제사는 두 자리 알파벳으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가끔 이게 항공사의 두 글자 코드와 겹쳐서 재미있기도 하다. 우리 관제소에는 에어서울(ASV, RS)의 코드와 약명이 같은 관제사님이 계신다. 그 약명을 볼 때마다 나는 에어서울이 떠오른다. 이런 게 그냥 소소한 재미인 것 같다. 이런 데서라도 재미를 느껴야 하는 상황인 것 같긴 하지만. 나도 약명 지을 때 국적사 두 글자 코드 좀 참고할 걸 그랬나. 진에어(JNA, LJ)랑 똑같이 LJ정도로 했으면 귀엽고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