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사명감에서 비롯한 영웅의 마지막 한 마디는 무엇이었을까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50일 내내 지겹도록 쏟아지는 비, 녹아내리는 빙하, 설 곳을 잃는 동물, 지구에 행했던 가해가 결국에는 곱절로 돌아오고 있다. 엄청난 인명피해와 뗄 수 없는 지진이나 쓰나미도 결국에는 거스를 수 없는 뜻이다. 2018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강진은 사망자 2,200여 명과 부상자 만여 명을 낳았다. 술라웨시섬의 팔루시와 근처 어촌에서는 약 2m 정도 높이의 쓰나미도 발생했다. 공항이 무너지고, 관제탑이 무너지고, 활주로에 균열이 생겼으며, 안타까운 관제인력의 희생도 있었다.
Batik6321, runway 33, cleared for take-off.
최악의 재해가 바다를 넘어 달려오던 그때, 팔루 공항 활주로에서는 바틱 6321편이 이륙 준비 중이었다. 기장인 Mafella는 이륙을 준비하는 동안 불안한 기운을 느꼈고 승무원과 지상 스태프들에게 준비를 서두르자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관제사의 이륙 지시 후 부기장의 역할이었던 가속까지 Mafella가 대신 맡아서 했다고 하니 당시 기장의 행동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륙 전의 항공기 상태를 베테랑 기장들은 무서운 직감으로 알아맞히곤 하니까. 이륙 준비를 마친 후 조종사는 예정된 출발 시각보다 3분 먼저 이륙 허가를 요청했다. ‘바틱 6321편, 활주로 33, 이륙을 허가합니다.’ 관제사 Agung의 마지막 한 마디였다.
활주로에서 바틱 6321편이 이륙한 지 채 1분도 되지 않았던 그 시간에 7.7의 지진이 강하게 팔루 공항을 강타했고 관제탑은 무너졌다. 이륙 후 1,500ft 높이에서 조종사는 팔루 공항 관제탑과의 교신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했다. 관제사는 그 주파수에 없었다. 항공기의 이륙을 도왔던 관제사 Agung은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죽음을 피하기 위한 대피에 참여하지 않았고 안전하게 이륙하는 바틱 항공을 끝까지 지켜본 후 타워에서 뛰어내렸다. 최후의 항공기 이륙 후 활주로는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처럼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쳤다. 영웅은 무려 148명의 삶을 연장시켰다.
Mafella 기장의 말에 따르면, Agung의 마지막 관제 지시에서는 어떠한 불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교통량이 혼자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만 늘어도 항공기 편명 숫자를 잘못 읽거나, 말을 더듬거리는 등의 실수를 하는 나는 이 말이 꽤 충격적이었다. 다른 동료들이 대피하고 혼자 남은 그 관제탑 안에서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아서이다. 타워 밖 창문으로 보이는 크게 일렁이는 바다의 물결, 폭풍전야의 공항 분위기, 아무도 없이 조용한 관제실 내부, 내가 팔루 공항 관제탑에 있었다면 나는 과연 비행기를 안전히 이륙시킬 수 있었을까. 아니, 타워의 흔들림을 느끼고 곧바로 다른 사람들과 대피하지 않았을까. Agung이 관제탑에서 미리 대피했어도 바틱 6321편은 지진에서 안전할 수 있었을까. 글쎄, 아무도 모른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그저 관제 '실습' 경험만이 전부였던 학생이었고, 당시에도 물론 아 그 관제사 참 대단한 사람이지,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관제를 하고 있는 지금은 대단한 영웅에 대한 존경보다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더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