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업무한정 취득, 그리고 악몽
매일 하던 관제와 주파수 교신이지만 오늘은 괜스레 감회가 새롭다. 출근하며 인사한 축축한 공항의 공기도, 눈알 굴려 하늘에서 찾아도 아직은 땅에만 살포시 내려앉아있는 비행기들도, 완벽하게 내게만 주어진 관제 시간도 무언가 적응이 안되고 이상하다. 오늘 오후를 기점으로 드디어 관제업무한정을 취득했고 단독근무가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늘 두 사람의 약명을 기록하던 업무일지에 이제는 감독관님의 관제 약명이 붙지 않아도 괜찮다. 따로 모니터링받지 않아도 관제석에서 혼자 있을 수 있고, 그 시간만큼은 내 주파수를 대표하는 진짜 관제사가 되었다.
타워에 올라오면서부터 바라왔던 일이라 홀가분하면서 신이 나기도 했지만, 고민을 안고 사는 타입이라 다시 또 생각에 잠기게 된다. 관제업무한정 취득으로 나는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갖는다. ‘관제업무를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권리'에는 늘 관제업무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작은 실수에서 비롯되는 긴 지연, 또는 발생 가능한 사고, 앞으로 그 모든 것들의 책임은 오롯이 내게 있다. 훈련 관제사로서 했던 고민들은 시간이 쌓이면 해결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관제사가 되었으니 더 깊은 고민과 더 깊은 생각들이 언젠가는 뼈가 아리도록 나를 스치겠다는 느낌이 든다.
왜 벌써부터 이런 고민을 안고 있냐, 고 묻는다면 한 달 전 꿈 얘기를 해주고 싶다. 최근에는 피크타임에도 교통량이 많지 않지만, 살짝 서늘한 겨울에서 초봄 사이에는 밤 열한시 경 출발 화물기가 많았다. 인천공항 세 개의 활주로 사이에 위치한 타 계류장과는 달리 화물계류장은 1,2 활주로 동측에 위치하고 있어서 들어가고 나오는 방향이 반드시 정해져 있다. 3 활주로로 이륙하기 위해서는 1,2 활주로와 터미널계류장을 지나가야 한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화물계류장에서 *인아웃바운드 교통이 꼬이면, 후방 견인을 대기하는 비행기가 최대 20분까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한창 화물 교통량이 피크일 때 나는 제2터미널 관제소에 있었기 때문에 제1터미널 관제소 주파수를 모니터하며 공부했다. 카오스 직전인 화물계류장 모습을 보며 살짝 걱정하기도 하고 다른 선배들의 관제 스킬을 배웠다.
*인아웃바운드(Inbound, Outbound) : 전자는 도착 항공편을 의미하고 후자는 출발 항공편을 의미한다. 우리말로는 출도착 항공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는 영어단어를 더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실제로 23시경에 화물기를 관제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워낙 관제탑에서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지라 내 방에서 잠을 더 청해야 했다. 세 시간이 채 안 되는 그 짧은 낮잠 시간 동안 악몽이 찾아왔다. 꿈속의 나는 밤 11시 피크타임에 화물기를 관제하고 있었는데, 지켜보던 CCTV에서 E급 747화물기가 자기 몸집보다 작은 또 다른 항공기를 뒤에서 받아버리는 모습을 포착했다. 부딪치는 그 순간에 머릿속을 때렸던 쾅-!하는 굉음은 덤. 순간 소름이 돋으며 몸의 모든 혈관 흐름이 정지하는 느낌이었다. 몽롱한 정신속에서 주파수로 조종사의 다급한 **mayday 신호가 들렸다. 사고였다. 그것도 대형 사고. 안타깝게도 내게는 꿈을 자각하는 능력이 없다.
**mayday : 항공, 선박 등의 무선통신 국제신호로 조난 상태임을 뜻한다. 보통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와 같이 세 번 반복하여 송신한다.
지옥 같고 끔찍했던 악몽에서 십 분정도 있었을까.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정말 힘차게 놀라며 잠에서 깼다. 진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내 마음이 나를 꿈 밖으로 끄집어내 준 걸까. 그 관제 시간도, 그 사고도, 그 CCTV 장면도 모두 꿈이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의 관제업무한정은 막상 기뻐할 수만은 없는 책임이다. 어깨가 무겁지는 않아도 뻐근한 정도의 느낌. 들뜬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해보겠다며 마음먹었던 11월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진심으로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