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First Come, First Served를 버릴 수 없어
터미널 사이사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기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천공항 계류장이 얼마나 복잡한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애틀랜타 공항의 탑승동 A,B,C,D와 같이 긴 막대 모양으로 줄지어 선 빼빼로처럼만 터미널이 설계되어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인천공항은 그렇지 않다. 두 개의 귀가 빼꼼하니 존재감을 드러내는 토끼 모양의 제1여객터미널과 여전히 새 건물로 남아있는 봉황 모양의 제2여객터미널은 각 주기장에서의 후방 견인이나 이동에 많은 간섭사항을 만든다. 전체적인 레이아웃을 보면 깔끔하고 예쁘기도 하고, 여객이 이동하기에도 편리하게 잘 설계되었다. 하지만 관제사 입장에서는 별로 그렇지가 못하다. 튀어나온 부분과 움푹 들어간 부분이 공존하는 1터미널과 2터미널은 상황별,주기장별로 사용할 수 있는 후방 견인 절차를 매번 다르게 하고, 항공기의 출발 순서를 조정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있는 항공기 순서를 관제사는 어떻게 결정하는 걸까. 항공교통관제는 기본적으로 *First Come, First Served의 법칙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모토는 이제는 좀 구식처럼 느껴지는 옛날 관제 방식이고, 교통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NextGen>이라는 신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부터는 항공교통 수용량을 최대화하여 ATFM(Air Traffic Flow Management)을 효율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원리가 등장한다. 'Best Capable, Best Served!' 한정된 시공간 자원 내에서, 교통흐름을 최대한 원활하게 하는 방식의 관제가 더 합리적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등장한 것이다. 내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First come, First served : 조종사의 요청이 들어온 순서대로 허가를 주는 것. 선착순의 원칙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NextGen : 미국의 대표적인 항공 전문기관인 미연방항공청(FAA)의 항공 현대화 정책. 항공의 안전성, 효율성, 접근성, 수용성, 예측가능성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기술과 절차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물리적으로 제한된 유도로 수용량 안에서, 저 비행기와 저 비행기 중에 누구를 먼저 보내줘야 할까...라고 머릿속 회로를 열심히 돌리는 사이에 이미 내 지시와 판단은 늦었다. 고민하는 시간을 최소화하여 교통흐름을 원활히 만드는 것이 관제사의 일이니까. 이런 상황이 최근에는 화물계류장 부근에서 굉장히 자주 발생한다. 항공 화물의 배송 단가가 오르면서, 인천공항의 부정기 화물 운항까지 합쳐진 화물 운항편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나를 꼬집듯이 괴롭히는 화물계류장에서의 딜레마는 다음과 같다.
1) 인접 주기장에서 C편과 D편이 거의 동시에 후방 견인을 요청했다. 이동하던 E편과의 유도로 간섭이 있어 예상 대기시간 3분을 주고 잡았다.
2) E편의 이동이 완료되고 정확히 3-4분이 지났다. C편과 D편에게 허가를 주려고 생각해보니 같은 유도로 뒤쪽에서 F편이 뒤쪽에서 후방 견인을 마치고 이동이 예상된다.
3) 이미 나는 C편과 D편에게 예상 지연 3분을 줬지만, F편까지 이동을 마치려면 4분 정도 더 대기해야 한다.
4) F편이 만약 바로 옆의 유도로를 사용하여 계류장에서 나가게 된다면 C편과 D편은 바로 후방 견인할 수 있지만, 더 빨리 갈 수 있었던 F편의 이륙 순서가 하나 정도 밀린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이다. C편과 D편을 4분간 더 대기시키거나, F편을 2분 정도 늦게 이륙시키거나. 선착순의 관점에서 보면 먼저 후방 견인을 요청했던 F편은 대기시킬 수 없다. 그러면 단순히 계산했을 때 C편과 D편은 4*2, 총 8분을 대기해야 한다. 게다가 인접 주기장이라서 후방 견인이 조금 더 오래 걸린다. 교통흐름의 효율성 관점에서 보면 F편이 우회하여 손해를 봐야 한다. 그렇지만 C편과 D편은 양보 받음으로써 더 긴 지연 없이 출발할 수 있다. 나는 F편을 2분정도 더 지연시키는 방법을 선택했고, 속으로는 F편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끝까지 "Thank you!"를 외치며 계류장을 빠져나가는 그 F편 조종사의 말을 듣고 나니 내가 훨씬 많이 더 고마웠다.
First Come First Served냐, Best Capable Best Served냐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후자가 우세하고 보편적인 관제 법칙이다. 사실 상황에 따라 닭이 먼저니 병아리가 먼저니와 같은 답이 없는 명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교통흐름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선착순 원칙을 지켜주고 싶다. 그래서 다른 항공기를 위해 양보한 항공기는 또 다른 양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지연 없이 이동시켜주려고 나름의 노력을 다한다. 이런 고민도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거야라고 생각해보지만 그래도 고민에서 자유롭기엔 내가 아직 부족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