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6급 받고 싶어요. T^T
항공분야의 UN인 ICAO에서는 조종사와 관제사의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서 두 항공종사자에게 항공영어구술능력 4급 이상을 요구한다. EPTA(English Proficiency Test for Aviation)가 바로 그 시험인데, 영어 등급은 1급부터 6급까지 나뉘고, 4급 이상을 받아야 (국제선)조종사와 (국제공항)관제사로서 일할 수 있다. 4급과 5급은 각각 3년, 6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비영구적인 성적증명이고, 원어민 등급인 6급은 평생 유효하다. 네이티브가 아니고서야 잘 받지 못하는 등급이라고는 하지만, 주변에 6급이 꽤 있다는 소문을 들어보면 받기에 완전 불가능한 성적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토박이가 느끼기에는 별따기나 다름이 없지만.
영어실력은 관제에선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4급이나 5급을 받은 이상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매번 성적을 갱신해야 한다. 학생 때 받아놓은 4급 만료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올해 시험을 신청하고, 취준생 시절 이후 오랜만에 영어 스피킹 공부를 하는 중이다. 시험의 80%에서는 평소의 관제용어를 활용해서 답하기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한 2년 전 쯔음인가 시험 주관하는 곳이 변경되면서 문제 유형이 바뀌었다. 리스닝/스피킹 평가가 각각 독립적이었던 지텔프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리스닝과 스피킹이 융합되어있다. 교통안전공단이 주관하는 현 시험이 좀 더 현업에 가까운 관제 영어를 평가받는 상황이라고 느꼈다. 학생들이 준비하기에는 조금 까다로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 실행파일을 다운받아서 들어보니 성우들의 영어 속도가 빠르지 않고, **ATIS방송도 실제보다는 아주 천천히 말해줘서 받아 적기가 수월했다. 그러니까, 듣기는 전보다 쉬워진 느낌이다.
*교통안전공단 홈페이지(링크) 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세 개의 트라이얼이 준비되어 있고, 공부자료인 pdf파일도 같이 업로드되어 있다. 내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컴퓨터로 가상 시험을 쳐본 후 pdf로 답안을 공부하면 큰 도움이 될 듯.
**ATIS(Automatic Terminal Information Service) : 자동공항정보방송. 공항에 이착륙하는 항공기들이 해당 공항 기상, 활주로 정보, 기타 사항을 알 수 있도록 한 주파수에서 끊임없이 방송해주는 것. 1시간마다 갱신하며 전화번호로도 들을 수 있다. 인천공항 아티스 번호는 032-743-2676. 학생 때 심심하면 듣곤 했다.
조종사가 응시하는 시험은 하나의 영역이지만, 관제사는 업무에 따라 비행장 / 접근 / 지역 관제 중 하나의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 타워에 있는 내가 선택한 건 비행장 관제. 활주로가 등장하는 공항 관제이기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장주 비행에 대해 공부했다. upwind, crosswind, downwind, base, final.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크게 할 줄 아는 말이 별로 없이 ‘Report base’를 당당히 외쳤던 정석비행장에서의 실습 날이 떠오른다. 다시 보니 아주 귀여운 관제를 했었다. 교관님들께 애정 어린 꾸중을 듣기도 했지만. 실제로 마이크를 잡았다는 경험은 스스로를 굉장히 큰 사람으로 느껴지게 해 주었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했던 겨울은 아래 사진에 남아있다.
듣기는 그냥 듣기이지만, 말하기는 여러 가지 요소를 평가한다. 발음, 속도, 어휘 등 요소에서 가장 낮게 받은 랭크가 본인의 등급이 된다. 발음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표준 관제용어와 프리토킹, 그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올린 글에서, 영어 네이티브들이 관제용어가 아닌 프리토킹을 시작하면 듣기가 잘 안 되면서 say again? 을 반복하게 된다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니면 ‘Hold short of Delta.’와 같이 악센트가 완전히 반대로 주어지는 문장에 대한 고뇌라든지.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고민의 총량은 같지만 요즘에는 ‘숫자 3을 어떻게 발음할 것인가’ 하는 데 더 오랜 고민을 낭비하고 있다. 표준 용어로는 [tree]라고 발음해야 하고, 입사 초기에는 그렇게 발음했지만, [tree]라고 발음하면 two와 헷갈려하는 조종사가 매우 많아 발음을 [three]로 바꿨다. 웃긴 건, ‘트[t]’ 발음이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조종사들에게는 [three]가 다시 또 two와 헷갈린다는 것. 왜냐하면 그들은 two를 거의 [thu]라고 발음하니까. 무한 고민의 시작이다. 그래서 3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무인가 3인가. 누가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다.
일단 시험을 볼 때에는 규정된 발음을 쓰는 것이 좋단다. 평소에 ***tree나 niner, fife라는 변형된 항공 발음 사용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지라 시험장에 가서도 그냥 마음대로 발음해 버릴 것 같은데. 이상한 데 신경 쓰지 말고 문장 구성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늘 발목을 잡는 건 프리토킹이었으니까! ****EPTA 6급 땄다XD 와같은 꿈같은 제목으로 다음 글을 올릴 수 있길 바라며.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러 가야 한다.
***tree, niner, fife : ICAO Phonetic Code에 따른 숫자 3, 9, 5의 정확한 발음. niner 빼고는 거의 대부분 지키지 않는다.
****그런데 EPTA 6급시험은 EPTA 5급을 보유해야 볼 수 있다. 와. 왜이렇게 까다로워진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