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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Oct 08. 2020

공항에서 여객이랑 대화해서 기분 좋은 이야기

언택트보단 택트가 좋던데요.

공항에는 아주 여러 곳의 직원식당이 있다. 여객이 출도착을 위해 움직이는 1터미널, 탑승동, 2터미널 각각의 크기가 워낙 큰 데다가, *랜드사이드와 에어사이드에서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는 공항직원들을 위해서 많은 식당이 입점해있다. 볼드모트 마냥 입에 담기도 싫은 그 질병이 퍼진 이후로, 출근하는 상주직원들이 많이 줄어 식당도 예전만큼 북적이지는 않는다.

*랜드사이드(Landside), 에어사이드(Airside) : 출입국 심사장을 기준으로 두고, 심사를 통과하기 전에 돌아다니는 곳이 랜드사이드. 통과 후 돌아다니는 곳이 에어사이드이다. 비행기가 주기된 계류장 등도 에어사이드에 포함된다.


요즘엔 에어스타도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이유에 최근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지만, 게으름에게 진 날에는 여객 도착층에 있는 식당을 주로 이용한다. 며칠 전, 텅 빈 탑승동의 도착층 식당으로 가던 중 중국인 여객을 만났다. 내 또래 즈음의 여성 두 명이었는데 뭔가 불안해 보였다. 아마도 길을 잃었을 것이다. 직원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는 날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구조요청의 신호를 보낸다. 내가 또 이런 데에선 친절하지, 생각하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영어로 뭐라고 질문하며 대한항공의 비행기 티켓을 보여준다. 늘 영어를 사용하는 직업이지만 네이티브의 영어는 언제나 어렵다. 뭘 원하는지 못 알아들은 데다가 다짜고짜 내민 티켓을 보고 있자니 뭐라고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2터미널로 가냐고 물었다. 아니다. 1터미널로 가야 한단다. 출발 여객이 아니라 도착 여객이었구나, 근데 왜 2터미널에서 여기로 왔지, 환승인가. 생각하며 1터미널로 가는 셔틀트레인 타는 에스컬레이터 방향까지 안내해주었다.


탑승동에서 1터미널로 가는 셔틀트레인은 굉장히 자주 있었고 동편과 서편 어디로 가든 금방 탈 수 있었는데 근래에는 한쪽 편만 트레인을 운행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도착 여객이 헷갈리지 않도록 현재 운행하는 쪽이 동편인지 서편인지 잘 표시해 두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그 도착 여객들도 내 팔 세 배는 되어 보이는 사이니지를 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갔는데, 막상 입구가 막혀있으니 서성거리고 있던 거였다. 안 그래도 없는 손님인데 더 잘 표시해주어야 하지 않나. 이게 서비스 평가 1등 공항의 현주소인가. 씁쓸해진다. 그냥 나한테 여객 안내를 하라고 하면 잘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지.


길을 안내해주니 고맙다며 캐리어를 끌고 가던 그 중국인 여객들의 뒷모습이 왜 이렇게 좋던지. 1터미널 카운터에서 여객을 핸들링하는 실습을 했던 대학생 때가 새록, 하고 생각났다. 겨울방학이 되면 고학년을 대상으로 **지상조업사인 스위스포트에서 실습생을 모집했다. 4학년 넘어가던 겨울이었나, 정석비행장에서의 실습을 마치고 곧바로 다음 달에는 공항 실습생으로 1터미널에서 근무했다. 우리가 맡았던 핸들링 캐리어는 에어캐나다와 루프트한자였고, C카운터와 J카운터에서 주로 여객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탑승권 발급 같은 거창한 일은 아니었지만 매일매일 공항에 출근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떨리고 기뻤는지 모른다. 곧 이 공항에서 근무할 그 날을 기다리며 매일 여객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디로 가시나요?’

**지상조업사 : 공항에서 항공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에어사이드 내에서 항공기를 견인하기도 하고, 랜드사이드에서는 여객과 수하물을 핸들링한다. 대표적으로는 한국공항(KAS), 아시아나에어포트(AAP)가 있다.


사람이 바글바글 했던 그 겨울, 쉬는시간에, J카운터를 내려다보며.


모바일 체크인과 priority, economy의 입장 줄이 달랐기 때문에 그런 걸 확인하고, 어지러진 줄을 바로 세우거나, 키오스크 활용을 도왔다. 계속 서 있어야 해서 다리는 좀 아팠지만 그냥 즐거웠다. 서비스직이 천직인 걸까. 아닌 것 같다. 하필 평창올림픽 기간이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서 온 선수단도 몇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엄청나게 큰 스키장비를 대형 수하물로 부치는 곳이 따로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공항에서 직접 현장을 경험해보니 뭘 엄청나게 많이 배웠습니다, 는 솔직히 아니지만 그냥 그대로 즐거웠다는 기억이 난다.


언택트니 온택트니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그냥 택트가 좋은 건 나뿐인 걸까? 곧 다시 북적일 공항을 기다리고, 그리고,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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