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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Apr 07. 2021

관제 법칙 : 비상 항공기는 1순위로 처리한다?

잊지 말자 관제우선순위

“날 도우러 오시오!!”


MAYDAY, MAYDAY, MAYDAY!


무슨 뜻인지 어느 조종사도, 어느 관제사도 알고 있지만 평생 항공에 종사하면서 실제 교신에서 몇 번을 들을까 말까 한 이 문장은 항공기가 비상 상황에 처했음을 알리는 관제용어다. 항공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연료가 바닥나서 안전한 착륙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경우 조종사의 결정에 따라 선언하게 된다. 비상 상황을 선언하는 것을 ‘emergency declare’라고 하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We are declaring an emergency.’와 같이 점잖게 말하기보다는 빠르게 메이데이를 세 번 외치는 것이 관제사에게도 빠른 사태 파악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메이데이를 선언한 항공기에게는 당연히 1순위의 우선권이 있다. 해당 내용은 국토교통부 고시 <항공교통관제절차>에서 확인할 수 있다.


2-1-4 운영상 우선순위(Operational Priority)

가. 조난 항공기
나. 민간항공 구급비행(MEDEVAC)
다. 수색구조 업무를 하는 항공기
라. 대통령 탑승기, 경호기, 구조 지원 항공기
마. 비행점검 항공기
(중략)
-긴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편의상 단어로 표시


mayday 선언 항공기는 조난 항공기로 취급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항공기보다 우선권을 갖게 된다. 이 때 조종사는 트랜스폰더 *squawk code 7700을 세팅하여 조난 상황을 알려야 한다. 실제로 7700을 셋하면 관제사가 보는 장비 화면에서 깜빡이는 경고창이 떠서 어떤 항공기가 조난에 처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위의 가-라 항은 전부 긴급 항공기를 우선 구조하기 위해 준비된 절차이며 그 외에 우선권을 받게 되는 항공기는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나 항행시설 등 점검을 진행하는 호출부호 flight check 항공기뿐이다. 2020년 11월 부로 개정된 관제절차에서는 핵 오염 대기 표본 채취 등 특별 임무를 수행하는 항공기에게도 우선권을 주도록 되어있다. 비행장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squawk code : 항공기를 식별을 위해 관제 기구에게 부여받은 번호. 조종사가 트랜스폰더에 0000부터 7777까지 설정할 수 있으며 7500은 hijacking(항공기 불법 납치), 7600은 radio failure(무선통신 두절) 7700은 emergency를 뜻한다.


각자 출동 위치를 다르게 배정받는 인천공항 소방대. 국토부 홈페이지


그럼 어떻게 우선권을 주게 되는가. 보통은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심각한 비상상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동 순서가 앞당겨지고, 공항 근처라면 착륙 순서도 앞당겨지게 된다. 비상에 처한 항공기가 착륙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은 공항 관제탑은 공항 이해관계부서에 상황을 전파한 후, 활주로 근처에 소방대와 안전 차량을 대기시켜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공항에서는 ‘full emergency’라고 부르며 비상계획에 포함시켜두는데, ‘local standby’라고 칭하는 준비상 상태도 있다. PAN PAN이라는 용어를 세 번 반복해서 말한 경우가 이 준비상 상태에 해당한다. 엔진 하나가 꺼졌거나(모든 엔진이 꺼진 경우는 mayday), 승객 또는 승무원에게 급하지는 않은 의료 지원이 필요한 경우, 심각하지 않은 기체 손상을 알릴 때 pan pan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니까, 문제는 있는데, 정상적으로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인천공항에도 가끔 local standby가 발령된다. 정말 생각보다 횟수가 잦다. 사유도 다양하다. 공기압, 랜딩기어, steering wheel(조종간)에 문제가 있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local standby로 발령한다. 대부분은 아무 문제없이 자력으로 주기장까지 이동할 수 있지만 아주 가끔 이동 불가능한 항공기가 생긴다면 견인을 통해 항공기를 이동시켜야 해서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내리는 비행기를 주시하게 된다. 정기적으로 비상 상황에 대한 교육도 받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irregularity) 발생한 경우에 대비한 매뉴얼도 달달 외웠는데, 막상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심란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 경력이 얼마 안 되는 내가 겪어본 가장 심각한 상황은 푸시백 후 기체에 문제가 있어 게이트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였지만.

**irregularity : 비정상적인 상황. 관제사는 잘 쓰지 않는 단어지만 항공사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실제 운항관리사를 하신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레-’라고 발음한다. 일본에서 온 것 같은 발음.


그래서 가끔 비상 상황이 일어나는 걸 상상하고 매뉴얼을 복기해보기도 한다. 내가 부닥칠 수 있는 비정상에는 장비 고장, 유도로 파손 등과 같이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대처 가능한 상황들도 있지만 당장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면 생각할 시간 조차 없을 것 같으니까. 지금 착륙하는 저 항공기가 갑자기 기우뚱하면서 활주로 위에서 오른쪽으로 쓰러진다면? 같은 물음을 스스로 해본다. 아니면 유도로 위에서 이동하는 항공기가 기내에 불이 났다고 신고한다든지. 그럼 나는 무슨 대처를 하고 어떤 교신을 해야 하나-하며 고민에 빠진다.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에. 비슷한 이유에서 항공 사고를 굳이 찾아보고 공부하는 이유는 앞으로 있을 그 사고들에 더 적절하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구할 수 있는 생명이 의미 없이 숨을 거두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조금 오글거리는 것 같지만, 어쨌든 늘 ‘인명’이라는 것과 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어서.


이렇게나 구체적인 항공 석사 과정이 있을 수가...


새삼스레 항공 선진국의 스케일에 놀라게 된 건, 영국의 크랜필드 대학교(전문 대학원)에서 개설하고 있는 석사 과정 때문이었다. <Safety and Accident Investigation>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석사 과정은 무려 2-3년 동안이나 항공 사고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하게 된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항공 안전성을 생각했을 때 엄청나게 전도유망한 분야는 아닌 것 같지만, uam 등 무인기 사고까지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본다면 또다시 흥미로운 분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은 정말 공부해야 할 것 천지다. 내가 재미만 있으면 공부가 아니라 취미가 될 수도 있겠지만.


으으 세상은 정말 공부할 것 투성이야 OTL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항공 사고에 대해 공부하고 소개하는 매거진을 발행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뭐가 될지 모르는 내 석사 전공 분야에 대해 미리 고민해보기 위해서라도(?). 옛 다큐멘터리에서 따온 이름, <항공사고수사대> 매거진에서는 특히 자국기의 사고였거나, 항공 교신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고에 대해 정리해서 연재하게 될 것 같다. 이런 글을 발행하기 위해 내가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커밍 쑨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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