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지연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ㅠㅠ
따르릉. 주말에는 관제탑에 전화가 잘 오지 않는데 웬일로 모르는 핸드폰 전화가 발신자로 찍힌다. 뭐지,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000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혹시 방금 나간 화물항공기 저희 항공편 ABC1234(이런 편명은 없음)가 조금 지연이 되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관제한 항공편이었다. 음, 진짜 조금 기다렸는데. 유도로에서 3분 정도 후방 견인하지 못하고 대기했던 항공편이다. 하필 뒤쪽에서 출발하는 항공기가 있어서 허가를 못 주고 대기하라고 지시했었다.
“아, 네. 그쪽에 있는 유도로가 길이 하나라서(들어오고 나가는 출입구도 하나임) 뒤쪽에 비행기가 있으면 못 밀 수도 있거든요.”
“아 그럼 사유를 ATC라고 해도 될까요?”
물론 사유가 관제기관(ATC) 허가 지연 때문이긴 한데, 그렇게만 쓰시면 왠지 제가 일부러 지연시킨 것 같이 되어 보이잖아요ㅠㅠ...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그 거 말고 딱히 쓸 지연 사유가 없을 것 같아 아 네,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유도로 때문이긴 하다. 원래 출입구와 유도로가 두 개인 화물 계류장에서 하나의 유도로를 *비상 주기용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지연이니까.
*비상 주기 : 어떠한 사유 때문에 항공기를 에어사이드 내 정해진 구역에 줄지어 주기해두는 것. 당연하게도 최근의 사유는 코로나 때문에 공항에서 놀고 있는 비행기가 많아서이고, 계류장 내 유도로 몇 개가 사용 불가 상태로 꽉 막혀있다.
전화를 끊은 후, 항공사에서는 이렇게 짧은 지연도 사유를 조사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여하튼 그런 복잡 미묘한 생각들이 들었다. 항공사의 항공편 지연 사유는 너무나도 범위가 넓어서, 허가 지연이 발생되면 사유가 뭉뚱그려 ‘ATC(항공교통관제, 관제 기관)’가 되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도 준비 다 됐다는 항공기에게 후방 견인 허가를 주지 못하거나 이동시키지 못하면 사유를 기입하도록 되어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지연 사유가 ‘유도로 용량 제한(으로 후방 견인 또는 이동 불가), 항공기 기체 결함, 주기장 미개방, 저시정, 제방빙’과 같이 다양한 카테고리로 나뉘어있다. 대개 출발 항공기는 출발용 주 동선인 유도로 위로 후방 견인하기 때문에 뒤 쪽에 먼저 출발 요청한 항공기가 있으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First come, first served가 기반인 관제에서는 항공기 이동 순위가 바뀌는 걸 별로 원하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아주 말도 안 되는 투정이지만 공항 유도로 용량이라는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관제사 재량으로 밀 수가 없었다고 함!이라고 사유를 자세히 기입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COVID(코로나)나 TXY(유도로)라고 쓰시거나... 저도 항공기를 지연시키고 싶지 않았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넋두리해본 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내 마음속의 대나무 숲인 브런치에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