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안전을 위해서니까.
단언컨대, 비행기는 안전하다.
지상의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사고 발생률이 낮다. 애초에 사고가 잘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사망 확률 조차도 낮은 편이다. 국내 자동차 사고와 항공 사고 사망 건수로만 비교해봐도 차량 사고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약 400배 정도 높다. 그런데 사람들은 좀 불안해한다. 나도 좀 불안하긴 하다. 나보다 천 배정도는 거뜬히 무거울 저 고철덩어리가 하늘에서 인간은 꿈도 못 꾸는 유영을 하질 않나.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항공기 기체 결함이나 엔진 파이어! 같은 사고를 보도하질 않나.
아주 낮은 확률로 비행기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생존율은 약 95%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하는 사고 때문에 비행기 탑승 자체가 무서운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출입구의 5열 이내 좌석에 앉는 것을 추천한다. 비상구를 기준으로 가까운 좌석이 탈출에 유리하니까! 연구 결과마다 달라서, 머리와 가까운 곳이 안전한지 꼬리와 가까운 곳이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또, 기종이 걸린다면 작은 비행기보다는 중대형 비행기를 타보도록 하자. 화물 운송용으로도, 여객용으로도 전천후 활약하는 Heavy급 기체인 *B777, A330은 손에 꼽을만한 큰 인명피해가 없었던 기종이다.
*2019년도 기준 두 기종의 Crash Rate은 각각 0.18, 0.19. @Airsafe.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항공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아주 그냥 비행기 머리가 땅에 수직으로 내리꽂은 데에서 오는 충격으로 죽는 게 아니라, 충격 후 발생하는 화재로 화상을 입거나 연기로 인한 질식사로 사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래도 핵이 터져 사망할 확률보다, 번개 맞아 사망할 확률보다도 비행기 타다 사망할 확률이 제일 낮다. 다음 달에 비행기 타고 여수 여행 간다고 무서워서 찾아본 거 아님.
여하튼 항공기는 큰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비를 잘 해두기 때문에, 그러니까 결함이 발생하더라도 여러 가지 확인과 체크리스트 후 운항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일단 이륙했다면 저 높은 하늘에서 비행 중 뚝!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예를 들어, 주기장에서 엉덩이를 빼는 후방 견인 후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탄 비행기가 주기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드물게는 활주로 가까이로 달려가다가 다시 터미널로 가야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승객 입장에는 짜증나고 피곤해지는 상황이다. 근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결함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떠버렸다면 나는 무사할 수 있었을까?
...라고 가정해보니 갑자기 정석 비행장에서의 실습 때가 떠오른다. 당시 비행장에서의 주 실습 기종인 **세스나를 타볼 수 있게 관제 교육원에서 도와주어서, 사고가 발생해도 민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쓰고 탑승만을 대기 중이었는데, 내가 타기 전 갑자기 ***관숙비행이 중단되었다. 알고 보니 다른 세스나가 활주로까지 택싱하는 도중에 엔진이 꺼져버린 것(!). 안도와 겁을 동시에 먹어서 안 탄다고 할까.. 하다가 이런 소형기를 또 언제 타볼까 싶어 올라탄 후 엄청난 멀미를 했던 기억이 있다. 왜냐면 바람이 무지하게 불어댔는데 비행장 상공을 빙글빙글 도는 장주 비행을 연속해서 했기 때문. 관제탑에서 측풍이 너무 세니 내려라 하는 지시를 받기 전까지 나는 안전벨트를 잡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중대형 비행기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멀미와 공포의 대환장 콜라보레이션이랄까...
**세스나(Cessna) : 항공기 제작사 이름. 보통은 경비행기, 자가용 비행기를 일컫는다. 운항 실습을 이 경비행기로 많이 한다.
***관숙비행 : 항공기 조종석 뒤에 탑승하여 직접 조종은 하지 않고 운항을 구경(?)하는 것. 조종사나 운항관리사나 관제사가 주로 함.
이렇게 엔진이 꺼져버린다든지 다른 중요한 조종장치가 고장이 난다든지 하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비행기는 활주로에 가기 전까지 기능을 꼼꼼히 점검한다. 그 걸 알기 때문에 관제사는 항공기가 유도로 위에서 잠시 점검하겠다고 요청하면 크게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 있도록 그냥 둔다. 점검 후에도 운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항공기는 주기장으로의 복귀(Gate Return)를 요청한다. 그럼, 관제사 입장에서는 이제 상황이 좀 복잡해진다.
인천공항에서의 주기장 배정은 관제사가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면 다른 부서에 연락을 취해서 복귀가 가능한, 즉 사용이 가능한 주기장을 찾아본다. 주기장이 정해지면 항공기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자력 이동이 불가한 경우 견인을 붙여 복귀 주기장으로 이동을 지시한다. 둘째로는 다른 기관의 관제사에게 상황을 전파한다. 다음으로는 비행계획을 관리하는 항공정보통신센터에 연락한다. 마지막으로 주기장 복귀에 관한 보고를 작성하면 끝.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좀 해야 될 게 많다.
예전에는 게이트 리턴을 하겠다고 하면 Noooo..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빌고 싶었다. 높은 확률로 유도로가 막히거나 주기장 가는 길이 복잡해지거나 하기 때문에. 근데 교통이 혼잡하지 않은 요즘에는 게이트 리턴이 하나의 퀘스트처럼 재미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고. 가끔 한 두 개씩 요청받아서 해결하고 나면 뿌듯하고 경험치가 쌓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도 레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