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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Oct 27. 2021

우당당탕 관제사 브로그 BR-OG

10월 27일 오늘도 어쩌다 출근


기억해보세요!


06:30

눈을 뜹니다. 전혀 못 잤어요. 옆에서 뭐가 시끄럽네요. 제 알람은  끄기 버튼을 누른다고 그냥 꺼지지 않아서요. 혹여나 알람 끄고 다시 잤다가 지각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기억력 게임을 해야만 알람이 꺼지도록 설정해뒀습니다. 4 곱하기 4짜리 판때기에서 색이 칠해졌던 부분을 기억하고 깨끗해진 그 판 위에 색칠되었던 부분을 눌러서 맞아야만 알람이 꺼져요. 아.. 틀렸어요. 틀리면 또 해야 돼요. 시끄러워 죽겠네.







날씨 조오타


07:15

급하게 집을 나서요. 제 인생에서의 중요도는 아침잠>>>아침식사이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공복으로 출근하기로 합니다. 오늘은 안개가 좀 꼈어요. 날이 흐린 것 같은데 낮에는 갤지 모르죠. 인천공항 상황은 어떻겠구나, 이런 식의 날씨 생각을 하며 공항으로 출근해요. 근데 버스가 왜 이렇게 늦게 오는지, 역으로 가는 게 네다섯 대나 있는데 꼭 눈치 없게 다 같이 '10분 후'에 온다네요. 어쩐지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많더라니.







좋은 아침!


08:45

짠, 공항에는 아까 도착했어요. 공항에서 관제탑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늦어도 08시 20분에는 터미널에 안착해야 마음이 편하거든요. 숙소에서 스테인리스 컵을 챙기고, 신발을 갈아 신은 후 뽈뽈거리며 도착한 관제탑 브리핑실에 얼굴을 내밀어요. 안녕하십니까! 인사하고 원래는 음주측정에 응해야 하지만, 코로나 예방 차원에서(측정기를 돌려쓰는지라) 중지되었어요. 대신 아침 체온을 재요.

현재 사용 활주로와 날씨 등 특이사항에 대해 브리핑받고, 오늘 교통량과 알아야 할 작업 같은 것도 머리에 새깁니다. "그럼 오늘도 수고해주세요!" 하는 조장님 말씀을 듣고 "네~!" 하며 다 같이 꼭대기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탄답니다.







이 화면을 주로 봅니다, @한국면세뉴스.


08:50

근무 관제석 교대를 할 시간이에요. 내가 인수받는 쪽이 됩니다. 모니터 화면과 창밖을 쳐다보면서 지금 우리 관할구역의 교통상황을 전해 들어요.

- 항공기 *푸시백 : KAL123(대한항공)은 East, DAL456(델타항공)은 South 밀었고요.

- 항공기 **택시 : AFR789(에어프랑스)는 RA, R11, Hold short of A 줬어요.

- 견인항공기 이동 : KAS 0호는 R17 M전 대기예요.

- ***사용 활주로 및 ****이양 주파수 : 활주로는 33, Contact Ground고요.

- 작업 상황 : 토목 0호가 R17쪽에서 작업하는데요, 이탈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고요. 언제까지 한대요.


아아, 아직 다 못 전해 들었는데 비행기가 부르고 그 와중에 전화기는 울리고 난리가 났어요. 저는 근무를 해야 해서 이만.

*푸시백(Push back) : 스스로 후진이 안 되는 항공기를 위해 출발 항공기 앞에 차량을 붙여서 항공기를 유도로 쪽으로 밀어주는 것. 인천공항은 게이트마다 푸시백 절차가 여러 개 수립되어 있다. East로 밀었다는 건, 항공기 머리가 동쪽을 보도록 푸시백 지시했다는 것.
**택시(Taxi) : 항공기가 이동하는 것. 유도로 이름과 이동 한계 지점을 포함해서 지시한다.
***사용 활주로 : 지금 이착륙할 때 사용하고 있는 활주로 방향. 바람 방향에 따라 바뀐다. 인천공항은 15/16이거나 33/34이다.
****이양 주파수 : 내 관할구역에서 벗어나는 항공기가 다음으로 교신해야 하는 관제 주파수. 이동지시까지 마친 후 다른 관제사 땅으로 가는 항공기에게 그 관제 주파수를 불러줘야 한다.







하이에어도 잘 가!


09:50

"JNA123, Contact Ground 121.75. Good day!"

진에어123, 그라운드 관제사 121.75와 교신하십시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휴, 그래도 비행기가 좀 늘었나 봐요. 예전보다는 관제 주파수에 목소리가 좀 들어차네요. 맡은 시간 동안의 근무가 끝났어요. 내가 인수받을 때처럼, 다음 시간 근무자에게 관할구역 교통 상황을 알려준 후 관제석을 뜹니다.

업무 수첩에 <오늘의 할 일>을 적어 넣을 차례예요. 오늘은 법인카드로 뭘 사야 하고, 저번 전표도 처리해야 하는데... 이따 하고.

그전에 커피 한 잔 내려서 얼음 몇 개 때려 넣은 다음에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습니다. 평일에 쉬고 출근했으니 회사 업무포털에 못 읽은 메일이 잔뜩 쌓여있을 텐데... 별로 열어보고 싶지 않네요. '본부 주간 업무보고'...체크. '승객 예보'...체크. 관제업무를 할 땐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상 메일은 체크해서 전부 날려버린 뒤 중요한 팀 공지나 작업 메일을 열어봐요. 다음 주부터 한 달간은 공사 때문에 유도로 어디가 막혀서, 표준 관제 루트가 어떻게 바뀝니다-하는 식의 메일에는 빨간색 중요 표시를 박아 넣어야 해요. 잊어버리면 큰 일 나는 것들에요.







그래서 인천공항 2터미널 쉐이크쉑 언제 연다고요?


11:00

아까 열 시에 화물계류장 부근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어요. UPS 화물항공 747 비행기가 정비 중에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거든요.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죠. 말하다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관제사는 식사도 교대로 해요. 빠르면 열한 시에, 늦으면 오후 한 시에 밥을 먹으러 갑니다. 터미널로 나가서 맛있는 걸 먹기도 하지만, 주로 상주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어요. 코로나 이후에는 공항 상주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살짝 불안해요. 습관이 돼서 식당에서 밥을 잘 못 먹고 그냥 샐러드나 간편식을 받아와서 관제탑에서 끼니를 해결합니다. 밥 먹고는 제대로 못 잔 잠을 다..ㅅ..ㅣ....Zzz...






커피는 나의 힘. 끄아악.


14:00

밥 먹고 근무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어요. 관제업무 말고도 맡은 일이 있어서 지금부턴 그걸 살짝쿵 잡아야 해요. 그냥 평범한 직장인1의 업무처리라서, 별로 궁금하지 않으실 것 같네요. 이게 끝나면 아까 빨간색 표시했던 메일을 다시 정독하거나,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항공 기사 스크랩을 보기도 해요.


오늘은 이런 기사가 있네요.

[인천공항, 아시아 화물 물류 어워즈 최우수 녹색 화물항공상 수상]

[단독] 직원이면 정직 · 퇴사... 사장님은 '사흘 사과문'​!

와우. 보안 사장님, 또 티비 나오셨네요? 작년엔 코시국에 워크숍갔다가 확진... 그만 알아보죠. 골이 띵 하네요. 구독자분들한테는 좋은 것만 얘기해드려도 모자란 시간이니까요.







날이 흐리면 구름이 이렇게 덮이기도 해요.


17:00

제 마지막 근무가 끝났어요. 조금 있으면 야간 조가 출근하는 시간이라서요, 관제실에 작게 마련된 탕비 공간을 슬쩍 훑어봐야 해요. 비어있는 공간에 커피스틱이랑 차를 채우고 뿌듯한 마음으로 꽉 찬 공간을 잠깐 감상해 봅니다.

자리로 돌아와서 업무 수첩에 내일 날짜를 적어 넣고, 내일의 나에게 선물하는 게으른 오늘의 내가 남겨놓은 일들을 곱씹어봐요. 어디 보자... *****uam 문서도 좀 읽어야겠고, 추워지니 ******제방빙 절차도 복습해야 하는데.. 에이, 괜찮아요. 내일은 야간 근무니까 오늘보다는 시간이 좀 있을 거예요.

*****UAM(Urban Air Mobility) : 드론택시. 최근 국토부의 K-UAM 운용개념서 1.0이 발행되었다.
******제방빙 : 제빙과 방빙. 기온이 낮을 때 항공기 기체 표면에 붙은 얼음을 제거하는 것을 제빙, 더 얼지 않도록 방지 용액을 뿌리는 것을 방빙이라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매일매일 스스로 건강상태를 점검해야 하는데요. 아침 점심으로 두 번이나 재서 기록하는 체온 측정지는 모든 조원이 잘 써넣었는지 챙겨야 해요.

어라, 빈칸이네.

선배님! 오후 체온 재셔야 해요!







제2계류장관제탑. 안녀엉~ 나는 집에 간다아~~


18:00

교대 근무의 가장 좋은 점이 뭔 지 아세요?

"칼퇴"입니다!

부럽죠?


안녕히 계세요, 관제탑아.

안녕히 계세요, 비행기님들.

안녕히 계세요, 활주로야~ 바람아~ 공항아~

왔던 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관제사 브로-그 BROG 끝.



GOO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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