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환영합니다.'는 좀 웃기잖아
오랜만에 관제하다가 고민이 생겼다.
조종사와 관제사는 영어로 이야기한다. 예외적인 케이스가 있다면, 비상상황에는 한국인 조종사와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이외에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한국어로 나누기도 한다.
관제를 하다 보면 가끔 인사말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조종사를 만난다. 습관이 되었는지 아주 그냥 말 끝마다 'Thank you.' 하는 조종사도 있고, 이동에서 우선순위를 준 경우에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헤어짐의 인사로 잘 있어요~ 대신에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경우다.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봇이다. 식당이든 카페든 뭘 샀든 어딘가에 가면 바이바이 대신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를 나온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건 득이 됐으면 득이 되었지 인생에서 절대 해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막 마이크를 처음 잡았을 때 조종사로부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역으로 '고맙습니다.'하기도 했다. 옆에서 들으시던 교관님이 뭐가 고마워요?ㅋㅋㅋ 하시길래 좀 이상한가 싶어 다시는 쓰지 않았지만. 근데 나도 진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굳이 의미를 따지자면 내 땅에서 안전하게 잘 나가줘서 고맙다거나 고맙다고 해줘서 내가 더 고맙다는 느낌?
지난 밤 근무 때, 맡고 있던 관할 구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조종사가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내 주파수를 떴다. 한국어로 인사를 받으면 보통은 '수고하십시오.'라고 받아치는데,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별말씀을요.'라고 대답하고 싶어졌다. 어릴 때 배우잖아? '고마워.'에 상응하는 대답은 '천만에/별말씀을.'이라고.
영어로는 You're welcome이지만 한국어로 전해받은 인사에 사가지없이 영어로 툭 던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별말씀을요라고 하는 건 이상하게 좀 재수 없어 보이는 것 같으니까..? 쓸데없이 고민하다가 나는 또 '수고하십쇼!'하고 비행기를 보냈다.
왜 고마움에 대한 답이 한국어로는 '별말씀을요'라는 요상한 문장이 되어버린 걸까?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동양의 문화에서 온 대답이 아닌가 한다. 사실 우리는 실제로 살아가면서 '천만에요'라거나 '별말씀을요'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누군가 고맙다고 하면 에이~ 아니에요~ 하고 말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고맙다는데. 어쨌든 이 '고마울 일도 아닌데요, 뭐.'라는 뜻의 표현들은 전부 스스로를 낮추는 것을 선으로 여기는 동양인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럼 '감사합니다'에다가 '수고하세요'라고 응하는 것도 꽤나 웃기지 않은가? 사실 '수고하세요'라는 말이나 '수고 많으셨어요'하는 말은 상급자나 웃어른한테는 쓰지 않는 말이다.(국립국어원 왈) 더해서 나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서도 그 말을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고'가 여기저기에서 남발되는 관제 교신이 어색했는데 다들 그렇게 표현하곤 하니까 베끼듯이 따라서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럼 감사함을 전해오는 말에는 대체 뭐라고 답하는 게 좋을까?
영어로는 대강 이렇게 대답하라고 교과서에 적혀있다 ;
You're welcome. My pleasure. Anytime.
반대 입장이 되어보니 제일 듣기 좋은 말은...
My pleasure. 제 기쁨인걸요. 일 것 같다.
그렇다고 이렇게 말하면 괜히 또 드라마 속에나 나올만한 대사를 치는 것만 같고......
헐. 오늘도 쓸데없는 고민을 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