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rm...?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중에 가끔 하는 실수가 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진짜 별 거 아니지만,
"손 시려서 양말 가져왔어."
라고 한다든지.
그럼 반응이 대부분 이렇다.
"양말..?"
그때서야 나는 내가 잘못 말한 걸 알아챈다.
"내가 방금 양말이라고 했어?"
이런 말실수가 잦은 건 아니지만, 보통 뭔가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바쁠 때 엉뚱한 단어가 튀어나오곤 한다. 나는 장갑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양말이라고 말해버렸나...? 하는 당황스러움에 잠깐 빠진다. 듣는 사람이야 그냥 말실수거니 여기고 대충 넘어가 주니까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단순한 말실수가 교신에서도 반복되면 그건 큰 문제다.
어떤 항공사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마 중국 국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남방항공 아니면 중국동방항공이었는데 여하튼 둘 중의 하나의 출발기와 교신하고 있던 중이었다. 정확히 항공편명이 기억 안나는 마당에 그냥 대충 지어보자면, 그 항공편의 편명은 인천에서 중국 다롄으로 가는 CSN682(CZ682)였다. 이동 허가를 받으면 조종사는 유도로 명칭을 그대로 복창해야만 한다. 그런데 허가를 복창하지 않고 갑자기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Confirm CSN682?" (중국남방항공682편 부른 거 맞아요?)
*지어낸 상황으로, 실제로 있었던 교신과 다릅니다.
뭐야, 하고 당황한 찰나에 나는 내가 항공편명 숫자를 잘못 불러줬다는 걸 깨달았다. 큰일 날 뻔했구나. AI 로봇이 아닌 사람으로서 소크라테스의 그것에는 비할 게 못 되겠지만 스스로를 위한 변명을 해보자면,
사람의 뇌가 참 웃긴 게 반복해서 오랫동안 말했던 숫자만이 입에 착착 붙는다. 남방항공은 인천공항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CSN684라는 항공편을 자주 띄운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차이나서던(중국남방항공의 관제 별명)-이라고 읽으면 뒤에 자동으로 -식스에잇포(684)'하고 말해야 할 것만 같다. DAL26/DAL158, ACA064, QDA9902도 다 관제 별명만으로 숫자가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친구들이다. 허가를 줄 때 나도 모르게 682편에게 684라고 불렀나 보다. 완전히 내 잘못이다.
이후로 숫자 하나하나에 더 신경 쓰는 버릇이 추가되었다. 더해서는 이런 습관도 생겼다.
한창 바쁜 시간대에 동남아로 향하는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한꺼번에 여러 대 동시에 출발한다고 하면, 그들은 KAL6**이라는 형식의 콜사인을 가지고 다 같이 나와 교신한다. 만약 마닐라로 향하는 KAL623와 자카르타에 가는 KAL627, 베트남이 목적지인 KAL679과 KAL683가 동시간대에 나오면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비슷한 자리에서 출발하는 같은 기종이면... 으아아! 이럴 땐 주파수가 붐비니 나도 조종사도 헷갈리기 십상이다. 이럴 때 나는 KAL6까지는 평소와 같이 빠르고 편하게 얘기하고, 코리안에어식스~ 이후의 숫자에는 하나씩 강조를 한다.
예를 들어, KAL623와 KAL627이 같이 나오면 각각 쓰리와 세븐을 강조해서 읽는다. KAL623는 [코리안에어식스투-!쓰리!], KAL627은 [코리안에어식스투-!세븐!]으로 들리게끔 몸과 마음(?)을 다해 강조한다. 이렇게 말해야 말하는 나도 정신 차릴 수 있고 듣는 사람도 편해진다. KAL623가 해야 할 일을 KAL627이 잘못 듣고 해 버린다거나 하면 내 관할구역에서의 교통상황이 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제사의 말은 한 마디가 아니라 한 글자에 실린 무게가 참 무겁다.
한창 숫자 가지고 말실수를 할 때 곁에서 가르치던 교관님께 들은 조언이 있다. 편명을 그냥 머릿속에 있는 대로 바로 읽지 말고, 모니터에 적힌 걸 보고 또박또박 하나씩 읽으라는 말. 지키기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 조언은 내 실수를 어떻게든 고쳐주시려 했던 말씀이라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나도 훈련 관제사에게 이렇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할 수 있겠지! •_•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