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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Nov 07. 2021

관제 법칙 : 반드시 정확히 말해야 한다

Confirm...?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중에 가끔 하는 실수가 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진짜 별 거 아니지만,

" 시려서 양말 가져왔어."

라고 한다든지.


그럼 반응이 대부분 이렇다.

"양말..?"


그때서야 나는 내가 잘못 말한 걸 알아챈다.

"내가 방금 양말이라고 했어?"


이런 말실수가 잦은 건 아니지만, 보통 뭔가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바쁠 때 엉뚱한 단어가 튀어나오곤 한다. 나는 장갑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양말이라고 말해버렸나...? 하는 당황스러움에 잠깐 빠진다. 듣는 사람이야 그냥 말실수거니 여기고 대충 넘어가 주니까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말실수 하는 애 누구야. 푸하하.



하지만 단순한 말실수가 교신에서도 반복되면 그건 큰 문제다.



어떤 항공사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마 중국 국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남방항공 아니면 중국동방항공이었는데 여하튼 둘 중의 하나의 출발기와 교신하고 있던 중이었다. 정확히 항공편명이 기억 안나는 마당에 그냥 대충 지어보자면, 그 항공편의 편명은 인천에서 중국 다롄으로 가는 CSN682(CZ682)였다. 이동 허가를 받으면 조종사는 유도로 명칭을 그대로 복창해야만 한다. 그런데 허가를 복창하지 않고 갑자기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중국남방항공 A380. 인천에 가끔 놀러온다.



"Confirm CSN682?" (중국남방항공682편 부른 거 맞아요?)

*지어낸 상황으로, 실제로 있었던 교신과 다릅니다.


뭐야, 하고 당황한 찰나에 나는 내가 항공편명 숫자를 잘못 불러줬다는 걸 깨달았다. 큰일 날 뻔했구나. AI 로봇이 아닌 사람으로서 소크라테스의 그것에는 비할 게 못 되겠지만 스스로를 위한 변명을 해보자면,


사람의 뇌가 참 웃긴 게 반복해서 오랫동안 말했던 숫자만이 입에 착착 붙는다. 남방항공은 인천공항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CSN684라는 항공편을 자주 띄운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차이나서던(중국남방항공의 관제 별명)-이라고 읽으면 뒤에 자동으로 -식스에잇포(684)'하고 말해야 할 것만 같다. DAL26/DAL158, ACA064, QDA9902도 다 관제 별명만으로 숫자가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친구들이다. 허가를 줄 때 나도 모르게 682편에게 684라고 불렀나 보다. 완전히 내 잘못이다.



이후로 숫자 하나하나에 더 신경 쓰는 버릇이 추가되었다. 더해서는 이런 습관도 생겼다.



Apron, KAL623?                                         Apron, KAL627?
Apron, KAL679?



한창 바쁜 시간대에 동남아로 향하는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한꺼번에 여러 대 동시에 출발한다고 하면, 그들은 KAL6**이라는 형식의 콜사인을 가지고 다 같이 나와 교신한다. 만약 마닐라로 향하는 KAL623와 자카르타에 가는 KAL627, 베트남이 목적지인 KAL679KAL683가 동시간대에 나오면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비슷한 자리에서 출발하는 같은 기종이면... 으아아! 이럴 땐 주파수가 붐비니 나도 조종사도 헷갈리기 십상이다. 이럴 때 나는 KAL6까지는 평소와 같이 빠르고 편하게 얘기하고, 코리안에어식스~ 이후의 숫자에는 하나씩 강조를 한다.


예를 들어, KAL623와 KAL627이 같이 나오면 각각 쓰리와 세븐을 강조해서 읽는다. KAL623는 [코리안에어식스투-!쓰리!], KAL627은 [코리안에어식스투-!세븐!]으로 들리게끔 몸과 마음(?)을 다해 강조한다. 이렇게 말해야 말하는 나도 정신 차릴 수 있고 듣는 사람도 편해진다. KAL623가 해야 할 일을 KAL627이 잘못 듣고 해 버린다거나 하면 내 관할구역에서의 교통상황이 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제사의 말은 한 마디가 아니라 한 글자에 실린 무게가 참 무겁다.


한창 숫자 가지고 말실수를 할 때 곁에서 가르치던 교관님께 들은 조언이 있다. 편명을 그냥 머릿속에 있는 대로 바로 읽지 말고, 모니터에 적힌 걸 보고 또박또박 하나씩 읽으라는 말. 지키기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 조언은 내 실수를 어떻게든 고쳐주시려 했던 말씀이라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나도 훈련 관제사에게 이렇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할 수 있겠지!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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