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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Jan 31. 2022

2년 연속으로 관제탑에서 나이를 먹다

3, 2, 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까치까치 설날은!



내일은 설날이다. 까치도 이런 명절엔 제 부모 찾아 갈 것 같은데, 휴일이고 명절이고를 불문하고 근무일엔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교대근무자는 스케줄을 보지 않고도 이번 연휴에도 당연히 가족들을 못 보겠거니 한다.


월요일이지만 공휴일인 오늘 같은 날에는 출근길 동네가 더 적막하다. 버스를 못 탈까 싶어 높은 신발을 신고 종종 뛰어 정류장으로 가는데 적막한 길 보도블록에 부딪히는 굽 소리가 경쾌하다. 나처럼 뛰어 오는 사람은 없을까 주위를 봐도 집 앞부터 정류장까지 출근하는 것 같은 사람은 나뿐이다. 명절이라서 그런가 전철도 텅텅 비어있다. 간간히 앉아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신세로 공항에 출근하는 근무자들이었다. 공항이 또 다른 집인 사람들 무리에 섞여 새벽에 일어나 피곤한 눈을 감았다. 해피 설날.




우리 팀 관제사는 1/4 확률로 새해 첫 해를 관제탑에서 볼 수 있는데, 운이 좋게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당첨됐다. 12월 31일 18시에 출근하는 야간근무를 하면 다음 해 1월 1일 아침 09시에 퇴근하게 된다. 집에서 나오면서는 가족들에게 "내년에 만나~"하고 농담 같은 진담을 던질 수 있다. 동정과 사랑을 담아 쳐다보는 눈들은 눈물로 뒤로하고 현관을 나선다. 저는 회사의 월급쟁이 노예인 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쉬는 날에 하는 슬픈 출근이지만, 그래도 주파수 너머로 위안을 삼을 만한 배려 섞인 격려가 들려오기도 한다. 12월과 1월, 2월은 관제 교신에서 한국어가 가장 많이 들리는 시기다. 일반적인 교신을 할 때에는 전부 영어인 관제용어를 사용하게 되어있고, 보통은 한국인 관제사와 한국인 조종사끼리도 영어로 인사를 나누지만, 크리스마스와 1월 1일, 그리고 설날에는 다정하고 따뜻한 한국어 인사가 오간다. 겨울엔 날이 추워서 그런가?  물론, 외국인 조종사에게는 시기에 맞는 인사말을 영어로 건넨다.

크리스마스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12월 31일에서 1월 1일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또는 해피 뉴 이어."
설 연휴 사흘 동안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 정답게 관제 주파수에서 울려 퍼진다.

사족을 달자면 오늘도 열 번 가까이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인사했던 것 같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나누는 동료애 같은 것이 주파수에서 느껴질 줄은 몰랐는데. 딱딱한 관제 교신에 더운 기운이 풍기는 유일한 계절, 겨울이다.


마스크 쓰고 코로나에 묶여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한 것 같은데, 이제 입사한 지가 만 2년 반이 됐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만 4년 차씩이나(!) 됐다. 회사생활이 짙어가는 만큼 익어가는 나이는 덤이다. 이쯤 되면 모든 사람들 나이에서 두 살은 빼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문을 가졌다. 십 년 전 학생 때에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이제 눈앞에 3하고 0자가 아른아른 거리는 숫자까지 도달했다. 시간이 참 빠르다. 1/64의 확률을 뚫고 내년 새해도 관제탑에서 보내게 된다면 반드시 출근 전에 로또를 한 장 사야겠다고 재미있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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