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왔을 때, 행거가 무너져 있었다. 커튼이 달린 2단짜리 행거였다. 옷장 옆에 늘 있던 것. 처음엔 그냥 짜증이 났다.
“아… 또 왜 이래.”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유는 명확했다. 행거에는 너무 많은 옷이 걸려 있었다. 계절이 지난 옷, 지금 입지 않는 옷, 무거운 롱패딩까지. 그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 행거는 주저앉아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그 행거가 꼭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 많이 불안했고, 많이 지쳐 있었다. 회사에서의 책임, 후배들에 대한 부담, 관계에서 받은 상처, 스스로에 대한 실망.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내 안에는 ‘버티고 있는 무게’가 너무 많았던 것 같다.
행거를 다시 세우기 위해 그 위에 얹혀 있던 옷들을 하나씩 꺼냈다. 생각보다 옷이 정말 무거웠다.
“그동안 이 행거가 참 힘들었겠구나.”
이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알았다. 나도 그랬다는 걸.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걸어두고 있었다. 다 잘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누군가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압박, 버텨야 한다는 생각. 정작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은 계속 미뤄두면서.
행거를 분해하고, 자리를 깨끗이 청소했다. 뼈대를 다시 세우고 차근차근 조립했다.
“그래,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 되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은 옷장 안쪽으로 옮기고, 행거가 견디기 힘들 옷들은 따로 보관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옷들만, 행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걸어두었다.
그날 밤, 집을 둘러보며 또 하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나는 집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정리하지 못한 빨래, 아무렇게나 쌓아둔 물건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내 삶의 가장 가까운 공간은 방치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존감이 낮아진 이유도 이런 ‘대충’의 반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몸과 공간을 소홀히 대하면 마음도 함께 흐트러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거는 다시 세워졌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무너진다는 건 끝이 아니라, 다시 세우라는 신호일 수 있다는 걸.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내려놓고 지금의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다시 구조를 짜라는 메시지였다는 걸.
요즘 나는 하나를 하더라도 ‘대충’ 하지 않으려고 한다. 씻는 일 하나, 정리하는 일 하나라도 의식적으로, 확실하게. 그게 나를 다시 세우는 방식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행거처럼, 나도 다시 서는 중이다. 조금 가볍게, 조금 단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