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는 이유를 아는 사람

by 설온새벽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재즈댄스 동아리에서였다. 2011년 3월, 그리고 어느덧 2025년. 시간이 꽤 흘렀다.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이 친구는 늘 톡톡 튀는 발상을 했고,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걸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발랄함과 깊은 감수성, 풍부한 상상력과 그 상상을 실제 ‘일’로 만들어내는 추진력까지. 여러 면에서 나와는 다른 결의 사람이었다.



대학교에서 아동가족학을 전공했지만 관심은 일찌감치 광고 쪽에 가 있었다. 영어 토론 동아리, 댄스 동아리, 버킷리스트 활동을 하는 동아리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스스로 확인해 나갔던 것 같다.



이 친구는 이후 국내 유명 광고회사들을 거쳐 지금은 스타트업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이 친구를 보며 “아, 이 사람은 나와 달리 일을 사랑하는구나” 라고 느끼게 된 순간들은 아주 사소한 장면들에서였다.



내가 보기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상황에서도 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담당자고, 재미있잖아.”



나는 야근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기고, 저녁 시간이 조금이라도 침해되면 내 자유가 빼앗긴 것처럼 느낀다. 이미 계획해둔 저녁의 리듬이 깨지는 걸 참지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다르다. 본인이 맡은 프로젝트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완수한다. 새벽 몇 시에 퇴근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업의 특성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이 친구는 이 일을 ‘버티는 대상’이 아니라 ‘몰입하는 대상’으로 대하고 있었다.



이런 태도 덕분인지 몇 년 전에는 칸 광고제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광고 업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놀랄 만한 성취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오래 봐온 가장 친하고 편안한 친구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멋지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친구로서 자랑스럽다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나의 태도는 달라질까? 지금 내가 '일하는 시간’과 ‘나의 시간’을 이렇게까지 명확히 구분하려는 이유는 혹시 내 일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스타트업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는 이 친구의 모습을 보면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그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데 온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나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받는 보상과 상관없이, 저 정도의 열정을 기꺼이 쏟을 수 있는 무언가는 내 삶에 존재할까?



이 친구는 내게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태도만으로도 나는 나의 일을, 그리고 나의 거리두기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아마 이 친구는 지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왜 지치지 않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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