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방의 추억
彼我_ 作
"별다방 갈래? 콩다방 갈래?"
"당연히 콩다방이지! 난 별다방 커피는 너무 진해서 못먹겠더라."
"그래? 난 그 진한 맛이 좋던데?"
별다방 그리고 콩다방.
요즘은 좀처럼 듣기 힘든 명칭이다. 하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당대 TOP 2에 해당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의 별칭이자, 커피 애호가들이 부르는 애칭이기도 했다. 어원도 단순하기 그지 없다. 브랜드명에 영어단어 'Star'와 'Bean'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스타벅스는 별다방, 커피빈은 콩다방이다.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90년대 후반 대학에 다니던 시절, 친구들 두 서넛만 모여도 당연하다는 듯 모두 별다방 또는 콩다방으로 발걸음했을 뿐. 지금이야 전국 곳곳에 카페 없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렵고, 심지어 대도시에서는 거리 한 블럭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 한 곳은 반드시 있을 정도로 카페천국이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지금과 같진 않았다.
종로의 유서깊은 '반줄(Banjul)'이나 호주머니 사정이 얄팍한 학생들의 서식지(?)였던 '민들레 영토'가 사람들의 귀에 익은 카페였다고나 할까. 그마저도 유동인구가 많은 신촌이나 종로에 나가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대부분 'OO커피숍' 또는 'OO다방'이란 간판을 단 개인 카페가 동네마다 두어 곳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고, 그마저도 지금과 같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다양한 커피메뉴나 드립(브루잉) 커피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별다방을 방문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건물 내외부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이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덩굴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세련된 유니폼과 말솜씨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직원들, Sally 또는 Eddie라며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던 낯선 문화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커피 주문을 위해 이어지는 복잡다단한 순서들. 기본적으로 필요한 메뉴명과 컵 크기, 커피의 온도를 결정하는 것은 둘째치고(예를 들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 에스프레소 샷과 시럽을 넣는 횟수를 넘어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원두의 산지까지 골라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곳으로 인도한 친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나왔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내가 '에스프레소 더블샷이 들어간 웻 카푸치노 톨사이즈'를 주문하는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하지만 무엇이든지 처음이 어려울 뿐, 두 번 세 번 유사경험이 쌓이면 그건 곧 습관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별다방 커피를 마시는 것은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한국의 커피산업을 고도로 일궈낸 것은 2~30대 여성 소비층이라고 소리높여 이야기하는 뉴스들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을 보면.
오죽하면 기업들이 밀집한 여의도나 강남 일대로 출근하는 젊은 여성들의 손에 들린 별다방 커피를 일종의 패션 액세서리처럼 여기는 풍조가 생겨났을까. 그래서인지, 2000년대 히트했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 앤디(앤 헤서웨이)가 상사인 미란다(메릴 스트립)를 위해 주문한 커피가 식지 않게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뉴욕 거리를 달리거나, 한 손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한 손으로 전화를 받던 모습은 너무도 익숙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나도 모르게 형성된 커피 취향 또는 습관은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비춰지는 모양이다. 미국으로 유학이나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에게서 받은 선물 중에 별다방과 관련된 것들이 종종 있던 것을 보면. 시애틀에 있는 별다방 1호점에서 사왔다는 커피잔 세트가 대표적인데, 선물받은 처음 얼마간은 아끼면서 썼던 것 같다. 잔 하나는 이미 깨져서 버리고, 나머지 하나는 어디있는지조차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바리스타란 직업이 급부상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각양각색의 원두를 이용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커피에 대한 지식과 홈카페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별다방은 더 이상 예전의 그 별다방이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 다양한 카페를 접하고, 커피에 대한 정규수업도 들으며, 잠깐이나마 바리스타 실무도 경험해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별다방을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난 가끔씩 별다방을 찾는다. 더 이상 그 때의 별다방도 그 때 맛보았던 커피도 아니건만, 이상하게 초록색 담쟁이 덩굴 앞에 서고 싶어질 때가 있다. 습관성 행동? 마케팅에 의한 관성의 법칙? 그런 거창한 이유까지는 아니다. 그저 별다방이라는 명칭과 함께 자동으로 떠오르는, 커피를 주문하는 일조차 난감해 도망치고 싶어지던 순진하기 짝이 없던 그 때의 나를 추억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별다방의 추억을 소환해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커피와
별 하나에
별다방 별다방
그리고 그 때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