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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Nov 05. 2023

가을이 겨울에게 보내는 편지

가을이 겨울에게

아직 학교에 가기도 전인 어린아이일 때, 가장 친한 친구와 옆집에 살았다. 5층짜리 계단식 아파트의 1층에,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 둘이 나란히 살게 되는 우연은 몇 퍼센트의 확률이었을까?


우린 당연하다는 듯 친구가 되었고, 운명이라는 듯 단짝이 되었다. 키가 큰 첫째 언니와 통통한 둘째 언니와는 다르게, 작고 말랐던 막내. 그 아이의 바짝 내려뻗은 까만색 단발머리가 찰랑이던 모습이, 여전히 선선하게 떠오른다.


아직 외동딸의 지위를 지키고 있었던 시절이라, 복작이는 그 아이의 집보다 우리 집에서 노는 일이 많았다. 내 방에 머리를 맞대고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고, 종이 인형을 오리며, 소곤소곤 나눴던 이야기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을까? 우린 종일 함께 떠들고 나서 각자의 집으로 헤어진 후에도, 허술한 금색 자물쇠가 달린 교환일기장에 편지를 썼다.



에세이작가 새봄





그때부터 쓰는 일은 즐거웠다.


생의 첫 기억과도 흐름을 같이하는 감각. '내가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기 시작한 것만큼 오래된, 익숙한 기분.


혼자서만 보는 곳에 적는 글도 즐거웠지만, 누군가 읽어줄 것이 분명한 글을 적는 일은 새삼스럽게 설렜다. 일찍이 편지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래서였을까? 매일 밤, 오늘을 함께 보낸 친구를 떠올리며,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되짚으며, 내일 어떤 일들을 하게 될까 상상하며, 적어갔던 문장들. 그것은 나와 함께 잠들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친구의 손에 전해졌다. 왼쪽 집의 나와 데칼코마니처럼 맞닿아있었던 오른쪽 집의 친구, 다정하고 성실했던 독자에게.








키가 자라기를 멈춘 후로,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 사람'이 아닌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편지를 쓰며 살아간다.


한 번도 본 적 없는이지만, 여기의 나처럼 그곳의 당신도 '사는 일에 진심'이라 믿으며. 내가 삶을 겪으며 적어가는 글이, 당신에게 살포시 닿기를 바라며.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마주친 나의 문장들이 당신을 피식 웃음 짓게 하기를. 종종 뭉클한 위로가 되기를. 언젠가 한 번 더 찾아보고 싶어지는 여운을 남기기를 꿈꾸며, 매일 쓴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가을의 끝자락에 섰음을 알려주는 비를 바라보며, 겨울로 가는 날들을 적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남동에서 썼던 봄날의 편지, 을지로에서 적었던 여름날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보내는 편지로 사계절을 완성해 보고 싶어서요.


함께 가요.

가을에서, 겨울로.




* 메일로 편지를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비밀덧글로 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11월 6일 월요일부터 30일간, 매일 에세이 작가 새봄이 쓴 일상이 담긴 편지가 도착합니다.

물론 따로 신청하지 않고 '브런치'에서 계속 읽어주셔도 좋습니다:)


<연남동 사계절(2019>), <여름편지(2021)>에 이은 [사계절 편지 프로젝트]의 세번째 이야기, <가을이 겨울에게(202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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