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 봉사자 수업 3.
녹음 과제를 하며 나는 또 하나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꾸며진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더 높게, 밝은 목소리로.
내 목소리는 많이 낮지는 않지만 중저음에 가깝다.
중저음 중에서는 하이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꽤 내성적이고 내향적인 나로서는 이런 목소리가 사회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본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은 데다 낮기까지 하면 상대방에게 소리가 잘 닿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평소에 조금 더 높은 톤으로 말하려고 애썼다.
녹음 과제를 할 때도 그랬다.
더 밝고 상냥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톤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내지 않고 꾸며서 내다보니 목이 더 빠르게 지쳤다.
목이 아프고 금세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많지 않은 분량을 녹음했음에도 자주 쉬며 꽤 오래 녹음해야 했다.
녹음 과제를 하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녹음하는 시간 나를 보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지만 이 녹음 파일을 단톡방에 공유해야 함을 알았던 나이기에 더 상냥하고 밝게 목소리를 꾸며내고 있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행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더 많은 수고가 들지만 지속 불가능성이 높아진다.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충전해주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덕목일 수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하여,
타인을 배려하기 위하여,
타인과 함께 매끄러운 관계로 섞이기 위하여.
과유불급.
언제나 문제는 균형을 잃고 넘쳐흐르는 순간에 발생한다.
타인을 과도하게 인식하느라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처럼.
과하게 목소리를 꾸며내던 그때의 나는 분명 균형을 잃고 있었다.
내 눈앞의 과업이란 글을 잘 이해하고 저자의 의도를 고민하여 내 이해와 해석을 담아 전달하는 것.
그런데 나는 그보다 나의 밝고 상냥한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나의 행동이었지만 그로 인해 겪게 된 부작용들로 나는 나를 잃어버리는 지경에 와있음을 깨달았다.
때때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은 '어떤 모습의 나'를 규정하는 틀이 되는 것이다.
밝고 상냥해야 한다는 믿음.
사회생활을 하며 내게 각인된 고정관념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긴 나를 연출하기 위해 나의 목소리를 애써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낭독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나의 목소리를 받아들여야 했다.
자연스럽게 내는 나의 소리가 어떤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변형시키려는 노력을 덜어냈다.
내게 목소리 연출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낭독하는 나의 이미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읽고 있는 글의 성격과 분위기,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어야 했다.
그렇게 다짐한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왜 그런 고정관념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며 살았냐고 다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에서 존재하기 위한 그때까지 나의 생존 노력이었다는 것을 인정해 주었다.
낭독을 하며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현재의 나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