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PAN, 다섯 글자가 결정한 사업의 그릇

덴마크에서 만난 대기업 회장님의 조언

by 김희욱

'씨앗호떡'이라는 이름에 갇힌 시야


토브할렌(Torvehallerne) 시장에 입점하면서 드디어 매일 아침 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고정된 자리에서 김치 호떡을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자, 이 일은 더 이상 한시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장사’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안정적인 공간이 생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태어나서 장사를 해본 적도, 요식업 경험도 전무했던 저에게는 메워야 할 빈틈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행복을 배달한다’는 좋은 뜻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비즈니스의 냉혹한 벽이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괴롭힌 건 '정체성의 혼란'이었습니다. 당시 제 노점의 이름은 한국 이름을 그대로 직역한 ‘Seed Hotteok(씨앗호떡)’이었습니다. 브랜딩의 ‘브’자도 모르던 시절이었기에, 상호명이란 그저 메뉴를 알리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파느냐"보다 "하나라도 더 파는 것"이 지상 과제였습니다.

호떡 노점 초창기 상호명


투어 대신 슈퍼마켓을 고집한 손님, 그리고 운명적 만남


그렇게 부족함을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어느 날, 코펜하겐의 찬 바람을 뚫고 한 귀인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그분과의 만남은 시장이 아닌 차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호떡 노점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저는 평소 해오던 현지 가이드 일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 덴마크 회사로부터 귀한 한국 손님의 투어 안내를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은 것입니다. 여느 때처럼 완벽한 투어 코스를 준비했지만, 정작 손님들은 유명 유적지 대신 코펜하겐 구석구석의 슈퍼마켓과 베이커리, 카페, 레스토랑만을 돌기를 원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미식에 관심이 아주 많은 유별난 손님들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덴마크의 식문화와 유통 구조를 밑바닥부터 파헤치는 치열한 시장 조사를 수행 중이셨습니다. 슈퍼마켓 진열대의 각도, 제품 패키징의 구성, 심지어 깨알같이 적힌 성분표 하나하나까지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살피는 그분의 행동은, 투어 안내를 맡은 제 눈에는 생경하다 못해 기이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인어공주의 썰렁함과 뉘하운의 풍경 대신 마트 진열대 앞에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미식 탐방’ 같은 일정을 소화하던 중, 차 안에서 그 손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 여기서 석사 공부를 마치고 왜 가이드 일을 하게 되었나요? ”


저는 제가 진행 중인 ‘행복배달프로젝트’와 시장에서 호떡을 팔고 있는 사연과 함께 가이드 일을 병행하는 이유를 담담히 들려드렸습니다. 손님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 현장에 가보자고 하셨죠.


다시 돌아온 시장. 그분은 제 분신과도 같은 호떡 자전거를 5분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지켜보셨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데리고 다시 시장 안으로 들어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인어공주 대신 유제품


장사와 사업을 가르는 5가지 조언


“이 파스타 가게는 왜 면 뽑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지 아나요?”

“이 채소 가게 감자는 왜 흙이 묻은 채로 진열되어 있을까요?”

" 이 과일 가게 2단 진열은 왜 보색을 쓸까요?"

“이 초콜릿 가게에서 초콜릿 배치는 왜 이런 각도로 했을까요?”

" 이 치즈가게 진열대 뒤에 놓여있는 잼과 술 무슨 역할일까요?"


시장 안에 매장 하나하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순식간에 들어오는 질문 공세에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매일같이 드나들며 눈에 익었던 시장 풍경이었지만, 단 한 번도 그 너머의 의도를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게마다 치밀하게 계산된 그 세팅들은 저에게 그저 익숙한 배경일뿐이었고, 쏟아지는 질문 앞에 저는 그 어떤 답도 내놓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 밖을 나가기 전까지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던 내게, 그분은 발걸음을 멈추고 질문 하나하나에 담긴 정교한 비즈니스 원리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진열이 아니라 고객의 심리와 본능을 철저히 계산한 '설계'였습니다. 그제야 제 눈에는 시장의 모든 풍경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장 밖으로 다시 나왔을 때, 그분은 제 호떡 노점을 향해 뼈아픈, 하지만 사업의 운명을 바꿀 5가지 조언을 건네셨습니다.


1. 가격이 아닌 ‘가치’를 매겨라: “여기는 유기농 시장이고 제품의 가격이 슈퍼마켓보다 높게 형성된 것을 고려해서 제품의 크기를 키우고 호떡 가격을 더 높이는 것을 추천할세.”


2. 음식이 아닌 ‘경험’을 팔아라: “호떡이 뭔지 모르는 방문객들에게 시각적인 프레젠테이션이 전혀 안 되어 있으니 호떡이란 제품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게.”


3. 움직임으로 고객을 멈춰 세워라: “손님이 오기만을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건 '공백'일뿐이네, 명동에 실타래를 파는 청년들처럼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필요하네.”


4. 기억될 수 있는 이름을 지어라: “‘Seed Hotteok’은 첫 방문 손님이 기억하기 너무 어려운 이름이네.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생각해 보게 "


5. 장사가 아닌 ‘사업가’가 되어라: “호떡이 아깝다 생각 말고 매일 샘플링을 하게. 당장의 돈이 아닌 가치를 나누는 것이 사업의 시작일세.”

2년 동안 나름대로 준비하고 거리를 옮겨 다니며 바닥에서 굴렀다는 자부심이 처참히 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마침 임시 주차해 둔 차에 딱지가 끊길까 걱정되어 저는 서둘러 투어를 마무리하고 그분을 행선지에 내려드리려 했습니다.


토브할렌 시장 점주들의 진열방식


‘코판(KOPAN)’의 탄생과 “풀밭”의 추억


차 안에서 일정을 종료하려는 순간,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자네가 하는 일의 뜻이 깊으니 이름 하나는 지어주고 떠나고 싶네.”


그분은 10초간 눈을 감으셨습니다. 정적 속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때 입에서 나온 다섯 글자, 그것은 전율이었습니다.


“K.O.P.A.N (Korean Pancake in Copenhagen)”


와우! 주차 딱지 걱정으로 멍했던 머리가 번쩍 뜨였습니다. 코리안 팬케이크, 코펜하겐. 이름 안에 정체성과 지역이 모두 담긴 완벽한 작명이었습니다. 제가 경외심에 찬 표정을 짓자 그분이 마지막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 자네, 한국에서 ‘폴바셋(Paul Bassett)’이라는 곳을 가본 적이 있나? ”


당시 한국 소식에 어두웠던 저는 그곳이 카페인 줄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했습니다.


“풀밭이요? 풀밭은 갑자기 왜 물어보시나요?”


손님은 허허 웃으시며 나중에 이 브랜드의 이름이 지어진 배경을 찾아보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분이 떠나신 후, 저는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손님이 바로 한국의 대기업 회장님이셨다는 것을요. ‘폴바셋’을 ‘풀밭’이라 말했던 제 민망함과,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한 미안함이 교차하며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풀밭 vs 폴바셋


우리들의 ‘판’을 세계에 펼치다


그날의 5가지 조언은 현재 KOPAN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즉시 씨앗호떡이라는 이름의 미련을 버리고 간판을 바꿨으며, 가격과 가치를 재정의했습니다. 그렇게 KOPAN은 코펜하겐 시장에서 단순한 노점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KOPAN의 사명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회장님이 지어주신 뿌리인 ‘코리안 팬케이크 인 코펜하겐’, 그리고 ‘한국의 멋진 판(무대)을 세계에 펼치자’는 비전입니다.


이제 KOPAN은 호떡을 넘어, 함께하는 직원들의 재능(달란트)에 따라 새로운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음식을, 누군가는 예술을, 누군가는 기획을 담아 한국의 ‘판’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날의 우연한 만남이 저를 장사꾼에서 사업가로 성장시켰듯, KOPAN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기회와 전율을 주는 멋진 ‘판’이 되기를 꿈꿉니다.


KOPAN 비전

KOPAN 탄생 비화 유튜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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