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온 브루스 'KIM'

인공기 덕분에 올라간 페북친구 숫자

by 김희욱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있었던 이유


덴마크에서의 첫 공식 일정은 교환학기 시작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었습니다. 전 세계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 기회가 세상 친구들에게 갖고 있던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덴마크에 온 이유는 유일한 선택지였지만 다른 친구들의 시간은 무엇으로 채워지는지 궁금했습니다.


덴마크 공업대학교(DTU) 오리엔테이션은 캠퍼스 투어와 네트워킹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부족한 영어 실력에도 용기를 냈습니다. 한국의 속도에 쫓겨 살아온 저와 달리, 친구들에게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덴마크 연구, 복지 제도, 심지어 취업까지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짧은 대화 후 저는 뭔가 한 방 맞은 듯했고 덴마크에 와있는 제 모습조차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도대체 왜 이곳에 온 걸까?'


텅 빈 목적지를 들고 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DTU 교환학생 오리엔테이션


인공기 앞에서 준비된 멘트가 삭제되다


아이스 브레이킹 후 자기소개 시간이었습니다. 대형 스크린에는 소개자가 속한 국기가 띄워졌습니다. 제 순서가 되자 화면에 태극기 대신 인공기가 보였습니다. 순간 내 차례가 아닌가 하고 갸우뚱했습니다. 제 차례가 맞은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저는 혼잣말로 '담당자가 국기를 헷갈릴 수 있지?' 중얼거렸습니다.


문득 공항에서 학교로 올 때 마주한 승객이 "Are you from North or South?"를 물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것은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이 기회에 남북한을 제대로 각인시켜 보자!'


북한에서 온 브루스 킴


자기소개로 준비했던 멘트는 모두 삭제되었고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래와 같이 소개했습니다.


"제 이름은 브루스 킴입니다. 브루스 윌리스와 브루스 리에게 영감을 받았습니다. 저희 집안은 김(KIM) 씨입니다. 저는 김정은 위원장님 가족과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이곳에 핵 연구를 하러 왔고, 조국에 기여할 것입니다."


결과는 대폭발이었습니다. 미팅룸은 아우성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친구들은 페이스북에서 제 이름을 급히 검색했습니다. 페이스북 친구 신청 알림이 제 핸드폰을 요동치게 만들었습니다. 강렬한 멘트 후, 사람들 반응을 보고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저는 재빨리 "사실 한국에서 온 교통공학도"라고 정정했습니다.


저는 의도치 않게 순식간에 페이스북 친구가 늘었습니다. 이후 투어 동안에도 친구들은 끊임없이 저를 찾아와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남북한 언어, 상호 방문 가능성 등 질문은 다양했습니다. 제가 덴마크 문화에 호기심을 가졌듯, 이 친구들도 TWO KOREA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공기라는 작은 해프닝 덕분에, 저희는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만의 속도를 고민했던 저는 낯선 땅에서 가장 강렬한 '한국인'으로 첫인상을 새겼습니다.


페이스북 개인 계정


자전거 도둑과 쿨한 도서관


오리엔테이션 후 덴마크 버디와 함께 도심 투어길에 올랐습니다. 나 홀로 감상했던 덴마크와는 다른 시각이 기대되었습니다. 지하철 한 칸에는 빼곡한 자전거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덴마크는 '자전거 도시'입니다. 자전거 문화는 최고지만, 버디는 자전거 도둑도 최고 수준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신뢰 사회'라고 알고 있던 곳에서 도둑이 많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도심에 자전거가 너무 많아 본인 자전거를 까먹는 사람이 많다고 했고 지하철에 실은 자전거도 급하게 내리다 보면 자전거가 하염없이 자기 손에서 떠나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잃어버린 자전거가 없으면 다들 남의 것을 태연하게 타고 간다고 했습니다.


버디를 따라 블랙 다이아몬드 도서관에 도착했습니다. 버디는 도서관 설립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구관과 신관이 연결되어 과거와 현대의 독서 방식을 함께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건물을 허물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대화하게 만드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버디는 이 멋진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라고 권유했습니다. 특히 여름에는 나체 수영이나 노상방뇨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시티 투어 ( 인어공주상/블랙다이아몬드 도서관)


'여기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구나.'


덴마크도 완벽한 동화 속은 아니었습니다. 사회 제도가 발달해도 사람은 늘 불완전 존재이기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서로의 불완전함을 서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대가 한껏 부풀었던 덴마크 교환 학기 시작 전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첫 시험에서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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