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가 아닌, '나의 질문'을 따라 떠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생이 되었을 때, 가장 기뻤던 것은 바로 스스로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대학교 학과를 결정할 때도 점수에 맞춰 들어왔던 터라, 정말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대한 관심사보다는 취업에 더 유리한 전공, 친한 선배들이 많은 곳 등 결국 생존에 더 유리한 쪽으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학과 선택의 아쉬움과 별개로, 대학교 1학년 때 제 삶의 만족도는 가장 높았습니다.
H.O.T. 멤버를 따라서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도 해보고, 귀도 뚫었습니다. 튀는 머리색깔 덕분에 대리출석이 불가능해지면서 출석률이 100%였던 학기였습니다.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듣고 여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간절히 원했던 '자유'의 맛이었습니다.
자유의 시간을 만끽했던 2년의 대학생활을 추억으로 간직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곧 끝날 운명이었습니다. 군대라는 통제와 반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외부 사회와의 단절이 시작되기 전, 잠시 무대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학부생활 때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전부 털어 한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한국을 벗어나니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곳을 보려 애썼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24시간이 주어지지만, 나라마다 그 시간이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그 다른 시간들이 모여 하루를 이루는 모습이 경이로웠습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한 개인의 시간을 정할 수 있을까?'
유럽 배낭여행이 제게 남긴 질문과 함께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2년의 통제된 시간은 제게 자유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제대 후 복학했을 때, 평범한 일상조차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다시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학점을 메우고 스펙을 쌓아야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3학년 1학기, 도서관 공기는 유독 무겁고 차가웠습니다. 한 학기 늦게 복학한 터라 후배들과 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낮은 학점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핸드폰 화면에는 토익 광고와 채용 공고가 쉴 새 없이 떠올랐습니다. 졸업과 취업이라는 이동의 바퀴가 어김없이 제 앞에 놓였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도서관 창밖으로 외국인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닫혀 있던 시야가 넓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를 찾다가 국제교류팀의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국제여름학교(AISS) 버디(Buddy) 학생 모집'. 저는 주저 없이 지원했고, 운 좋게 선발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교류하며 세상에 대한 관심은 다시 커져갔습니다. 그들을 보며 배낭여행 때 품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 친구들이 사는 나라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 질문은 '어느 회사에 지원할 것인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력서 대신 교환학생 안내 책자를 뒤적였습니다. 다른 나라 또래들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4학년 2학기 생이 지원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문이 열린 곳이 덴마크였습니다.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수식어는 그때도 제게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저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결국 저는 이력서 창을 닫고,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향하는 비행기 표 예매창을 띄웠습니다. ‘결제’ 버튼을 누르던 순간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 막막한 두려움과 알 수 없는 해방감, 그리고 심장을 뛰게 하는 설렘 '
그 비행기 표는 도피처가 아니었습니다. 정답이 정해진 사회의 시험지를 잠시 내려놓고, 이력서 한 장이 보장하는 예측 가능한 미래 대신, 비행기 표 한 장이 약속하는 예측 불가능한 경험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제 인생을 통째로 바꿀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