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길을 걷다 마주하는 세계
시간을 간직한 공간을 거닐거나, 공간안에 들어섰을때
또 다른 세계의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종교적 이념과 차이를 떠나서 온전히 그 속에 시간을
느낄수있는것은 누군가의 지나간 시간을 담고 있어서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길위에 내 발자국이 포개질때는 입국심사를 마치고 낯선공간에 들어서는것과 흡사하지 않을까..
생경한 이전의 시간들이 남긴 흔적들이 편하게 볼수 있는 것들이라면 그나마 마음은 편할텐데..
오늘 마주한 과거의 지금시간은 그러지 못하다.
믿음을 지켜내는것이 쉽지 않았던 시대의 역사는
믿음이 하나의 커다란 세계안으로 들어서 있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믿음이란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도 하게 한다.
그때의 시간도 신은 기도하는자의 소리를 들었을것이고,
지금의 시간도 기도하는자의 소리를 들었겠지..
핸드폰의 찰칵 소리가 유난히도 커서 기도의 시간을 방해 하는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한없이 흐르지 않을것 같은 시간은 시작이 있으면
언제가 끝이 있음을 또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서울역 뒷편의 길들은 시간을 추적해 가는듯하다.
언제가는 또 달라져 있을것만 같은 동네의 모습은
애잔하고 쓸쓸해 보이는것은 왜 일까 싶다.
삶이 그대로 투영된듯한 모습을 내비치고 있어서일까..
활기를 찾아보기 힘든 '시장'이라는 장소의 특성은
사라져 버리고 일부공간만 활용되는듯한 모습이
언제가는 사라질 공간으로 느껴져서 그런걸까...
쓸모가 있었던공간 ,쓸모가 아직은 있는 공간, 쓸모가 매우 있는공간 으로 분류하여 바라 보는 시선이
내심불편하지만 부정할수 없는 시선인듯 하다.
90년이란 세월을 지나온 성우이용원은 시간의 계산이 무색하게 하고,
아직도 돌고있는 이발소 광고판은 지금과 그때의 시간들을 연결해주는것 같다.
어느한공간의 지나온 세월을 보고,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담고 있는 얼굴이 쇼윈도우 넘어로 비친다.
저 만치 흐른뒤 비칠 내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좀더 여유가 있고 ,좀더 배려가있고 , 좀더 열린시각을 가지고 있고, 좀 더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나를
보고싶지만,
더 많이 마음이 좁아져 있고, 더 많은 잣대들로 세상을 들이대고 있고, 더 많이 여유가 없는 하루들을, 더 많이 시간의 흐름에 쓸쓸해 하는 지금이 보인다
지금과 공존하고 공유하기에 그자리에 머물러 있을수
있었을 성우이용원의 간판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내 물음에 답을 주는것 같다.
추적하듯 걸어온 길의 끝에서
지금을 지금으로 바라볼줄 아는것만으로도 제대로
서있는거라는 답을 듣는것 같았다.
2017.2.19 메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