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예술가 라이프

고통을 승화시켜 그리다

by Athena Kim

공화장애가 쓰나미처럼 내 몸을 덮쳤다. 벌써 팔 년 하고도 일개원 전이다. 숨쉬기가 가쁘고 시야가 흐려지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당장 쓰러질 것 같고 쓰러지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은 공포스러운 느낌이 내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를 서서히 잠식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온몸의 근육은 굳고 따라서 마음도 딱딱하게 얼어버렸다.


짐가방 두 개를 가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지 불과 일주일이 채 못 되었는데 내 미래가 갑작스럽게 어두워지고 막막해진 것이다. 당장 앞길이 보이질 않으면서 뇌기능이 일시정지된 곳 같았다. 뇌에 고장이 난 것이었음을 수년이 지나고서야 정신건강전문의를 통해 알게 되었고 수용하였다.


심장 안에 시한폭탄장치가 있어 언제든 터질 것 같았다. 혼자 텅 빈 당시 남자친구의 아파트에 남아 있는 것이 불편해 안절부절못하지 못하였다. 다행히 밖으로 나가 찻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날 미치게 불안하게 했다. 샌프란시스코시내 국립공원에 위치한 베이커 비치를 지나 랜즈 앤드까지 족히 한 시간 반은 걸었다. 불안감에 압도된 몸과 마음을 살리려 한 노력이었던 것 같다.


랜즈 앤드에 도착해 트레일을 따라 걷다가 인적이 없는 절벽 위에 올라가 목놓아 울었다. 울다 지치면 파도치는 바닷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을 떴으나 잘 보이지 않았다. 많이 울어서 귀가 먹먹 거리고 코는 편히 숨쉬기 할 수 없을 것 같아 입으로 숨을 들이 내 쉬었다. 순간 여기서 떨어지면(?)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한발 내딘 발을 뒤로 내디뎠다. 순간 아찔하더라.


바람이 찼다. 갑자기 너무 추웠고 무서워졌다. 불편하더라도 돌아가리라. 다시 터벅터벅 왔던 길을 돌아 찻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빈 아파트에 돌아와서 게스트룸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방구석에 있던 빈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짐가방에서 꺼냈다. 스케치 없이 캔버스에 물감을 짜고 붓과 페인팅 나이프를 가지고 내 몸 안에서 이끄는 에너지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의 첫 추상화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추상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 몸 안에 가득 찬 무언가를 밖으로 끌어내 표출하고 표현해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을 뿐.


한참을 물감을 짜고 흘리고 짓이기고 잡아당기기를 반복적으로 하며 표현을 하였다.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색이 주를 이루고 그리고 골드 컬러가 악센트로 사용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 뭉치고 꼬일 대로 꼬인 무거운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것 같다고 할까……이것을 카타르시스라고 심리학에서 말한단다. 한참을 그리고 나면 굳었던 근육이 좀 풀리고 피곤함에 잠을 잘 수 있었다.


돌아보니 내 추상회화 작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