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돌- 꼴찌를 위하여
민중가요, 줄여서 민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술자리서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모자라다.
하지만 정말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민중을 위한 노래". 민중은 쉽게 말해 사회를 이루는 모든 국민들을 이루는 말, 즉 민중가요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고 나는 정의를 내린다.
보통 오랫동안 불려지거나 기억되는 노래들은 시간이 지나 다음 세대까지도 공감받고 위로가 되는 노랫말이나 가락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민가들은 대부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위로가 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들이 내가 민가를 좋아하는 이유다.
이번부터 내가 민가를 한곡씩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어떤 곡을 고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민가는?' 생각을 했고, 한돌의 <꼴찌를 위하여>가 바로 그 곡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초등학교 5~6학년쯤. 학교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옛날 대형 TV에 노랫말을 띄어 놓고 노래를 들려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에 내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느낀 감정은, '꼴찌들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나는 공부도 잘하고 반장이니까 꼴찌들을 위해 열심히 도와줘야겠다.' 등등의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 이 노래는 나한테 있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아직도 그 감흥이 남아있다. 다른 대중가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꼴찌의 입장에서 부른 노래'라는 점과 한돌이 가진 특유의 툭툭 내뱉고, 쓸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서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느꼈기 때문일까?
그때까지는 이 노래가 타인이 외치는 소리라 생각했다.
최근 이 노래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이 사회에서 꼴찌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공부를 잘하든, 축구를 잘하든, 싸움을 잘하든 잘하는 게 있다고 외쳤던 어린 시절에 비해
지금의 나는 무엇을 잘한다고 외치고 다니는가?
나이가 들수록 한낱 인간들이 세운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의 기준을 쫓아 살고,그 기준을 쫓아 살다 보면 나는 한참 뒤에 떨어져 있다.
그렇게 내가 나 자신을 꼴찌로 만들어 버린 삶이, 내 20대의 삶이다.
시간이 지난 후 이 노래를 들으며 깨달은 것은,
이 노래는 타인이 외치는 소리가 아닌 나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한돌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안타까움은, 어쩌면 이 사회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이 노래에서 가장 와 닿는 노랫말이다.
"과연 이 사회에서 일등은 누구일까?"
국민들이 권리를 준 정치인?, 돈이 많은 경제인?, 미래를 개척하는 과학자?, 그 외의 권력자?!
난 아쉽게도 이 모든 것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냥 중간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꼴찌다.
왜 한돌은 어설픈 일등, 자랑스런 꼴찌라 표현을 했을까?
오랫동안 생각해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정의와 양심'과 반비례해서 갖게 된 욕심의 결과가 이 노래에서 일등과 꼴찌로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즉, 국가의 주체인 국민으로서 '정의', 혹은 더 본질적으로 인간으로서 '양심'으로 한돌은 꼴찌와 일등을 나누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상하건대 이런 기준에서 보면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일등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일등은 이 꼴찌의 글을 읽지도 않을뿐더러 혹 읽더라도 기분이 나빠 더 이상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꼴찌의 글을 삭제할 수도...)
그렇다면 남은 사람들을 위하여, 꼴찌들을 위하여 한돌은 그다음 노랫말에서 이렇게 부른다.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은 거야.
지금도 달리고 있지 하지만 꼴찌인 것을
그래도 내가 가는 이 길은 가야 되겠지
일등을 하는 것보다 꼴찌가 더욱 힘들다
바쁘게 달려가는 친구들아
손잡고 같이 가보자
보고픈 책들을 실컷보고
밤하늘의 별님도 보고
이 산 저 들판 거닐면서 내 꿈도 지키고 싶다
어설픈 일등보다는 자랑스런 꼴찌가 좋다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