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이후였던 것 같다.
활동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한정적이었던 시골 생활에서는 낯을 가리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 당시 내 주위에는 자라면서 이미 익히 보았던 사람들만이 있었고,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다닌 친구들과 성장했다.
아주 어릴 때 보았던 친구들과 사춘기가 될 시점까지 자랐기 때문에 낯을 가릴 기회가 없었던 것과 같다.
그러다 고등학교는 좀 더 큰 도시로 유학을 하게 되었다.
처음 가는 곳이고 내가 아는 친구는 같은 중학교에서 진학하게 된 친구 네 명이 전부였다.
5백 명이 넘는 친구들 가운데 내가 아는 친구가 거의 없었고
또 어떤 친구들인지도 모르고, 이곳에 오면서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는
장점도 없는 상태였다.
중학교 때처럼 옆 반에 가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거나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낯설었던 것도 있었고, 또 학교에는 나보다 덩치도 크고 또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잘난 도시의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이미 시골 출신이라는 데 꿀리고 있었고 게다가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보니
도시의 아이들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책들로 이미 공부를 마치고 진학한 상태였다.
그러니 나는 이미 자신이 없었고, 자연히 친구를 사귀는데도 조심하게 되었다.
물론 그런 데에는 작은형 친구가 내가 다니던 학교에 진학했다가 행실이 좋지 못한
친구와 어울리게 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하여 대학 진학도 제대로 못 한 사례가 있어
입학하기 전부터 귀가 아프도록 친구 사귀는 데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이유도 있었다.
아무튼 그때부터 친구를 사귐에 나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더라도,
그의 성향을 살피고 난 후에 비로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친구 관계는
매우 한정적이었고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나이가 들면서 관계 맺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아니 힘들어한다.
누구를 만나 쉽게 친구를 된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솔직히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주저하고 있다. 예전 낯가림할 때보다 더
소극적이고 보수적으로 한다.
굳이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이제 그냥 마음만으로 사귀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격이나 배경이나 성향 등 이것저것 따지게 되고
행동거지 하나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본 후에야 관계를 맺으려고 하니 어디 낯선 곳에
가는 것도 꺼려지고 사람 만나는 것도 그렇다.
심지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때 얼굴을 알고 같은 반이었던 친구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부담스럽다. 만나도 안부를 주고받으면
그 이후에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다. 자라면서 함께 한 추억이 없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이 들면 친구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지금 남아있는 친구들과의 관계만 잘 유지하려고 하는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이 들면서 새로운 관계 맺기는 더 힘들고, 친구는 여전히 노년에도 중요하다는데
어찌 이렇게 마음이 좁아지고 까탈스러워지는 지 모를 일이다.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으니 참으로 걱정스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