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오십이 넘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도 가끔은 하게 된다.
아니 죽음보다는 '혹시나 치매에 걸리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더 크긴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도 가끔 든다.
언젠가 죽을 거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고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거나 겁나지는 않다. 좀 안타까울 수는 있어도 말이다.
진짜로 걱정되는 건, 내가 나를 모르는 상태에 다다르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내가 살아있음에도 살아있음을 알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주위의 사람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산다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절대적으로 고귀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나는 모든 생명을 그대로 인정받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살아있음을 알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는 알고, 주위 사물이나 사람이 누군인 지
식별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 생명은 나는 생명이지만 또한 생명이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해 주지는 않고 있다.
외국에서는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나라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있음의 가치가 느껴지지 않을 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가 되기 전에 나는 내 스스로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살아있음이 좋다. 또 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죽을 때 아름답게 죽고 싶다. 아니 깨끗하게 죽고 싶다.
추저분하게 생명이 붙어 있어서 끌려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태어날 때 내 의지가 단 1도 없었지만 죽을 때는 나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그저 하느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내가 불경죄가 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추잡한 종말을 맞고 싶지 않다. 물론 그렇게라도 사는 것이 좋다면
그냥 살아가면 된다.
오래 사는 것도 복이다. 그러나 편안하게 죽는 것도 큰 복이다.
나의 할머니는 88세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기시기 전에 아프지도 않고 그냥 저녁밥 드시고
주무시다가 편안히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할머니 옆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할머니는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나의 마지막도 그랬으면 좋겠다. 꼭 가족이 지켜보지 않더라도,
아픈 시간이 없었으면 더욱 좋겠지만 만약 아프다면 하루나 이틀 정도만 아프다가
고요하게 삶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나이가 몇 살이라고 안다면
그 때까지만 살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내 생명을
컨트롤 한다는 생각은 신에 대한 도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