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확실히 알 지 못했지만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날 부터 들어왔던 말이라 성실해야 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들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했었으니까.
선생님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결석하지 않고 개근하는 것이 성실의
일면이라고 했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회사 생활에 충실한
것이 성실이라고 생각을 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한다는 그 말을 잊지 않았다.
다만 잊지 않았을 뿐, 성실은 그냥 기본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성실하기만 하면 성공하는 줄 알았다. 열심히 회사에 다녔다.
결근이나 조퇴나 지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난 그것이 성실인 줄 알았다.
누구나 그 정도는 다 하는 것인데 난 순진하게도 성실하게 출퇴근만 했다.
사실 성실은 성공, 또는 성취의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성실은 다른 사람에 비해 나를 돋보이게 하는 차별요소도 아니다.
장점도 아니고 역량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그냥 공기 같은 것이다.
너무 성실하지 않으면 그때서야 그 모습이 드러나지만
그냥 있을 때는 아무런 차별요소가 되지 못한다.
성공의 요소는 근면이나 성실과 같은 추상적이거나 기본적인 것들이 아니다.
능력이 최고의 성공요인이다. 일을 처리하는 능력, 사람과 관계를 맺는 능력,
상사의 마음에 쏙 들게 하는 공감능력 등,
결코 성실은 이런 성공의 요인에 포함하지 않는다. 두루뭉실하게 그런 것들이
성실이라는 이름으로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성실과는 다른 것들이다.
그저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 말은 바보처럼 살았다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난 그렇게 살았다. 성실하게......즉 바보처럼, 고지식하게, 일한 만큼 돈 버는,
쉽게 말해 투자는 나의 노력이 동반되지 않은 죄악으로 여기는,
그런 어리석은 '성실'의 덫에 빠져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성실이라는 덫을 빠져나올 용기는 없다.
아니 그럴 주변머리가 없다. 이게 내 모습이라고 우기며 그냥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덫을 경멸하고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그 덫에서 빠져나올 인물이 되지 못한다.
나이를 먹고서야 겨우 성실이라는 덫에 빠진 것을 알았지만
빠져나올 요량은 없다. 슬프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