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내 곁엔 누가 있을까

by 지오 그레고리오

연암은 69세 되던 해 처남과 친구가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다산은 회혼식을 위해 모인 친지들이 다함께 임종을 지켜 주었다고 한다.

둘 다 멋지다.

연암은 연암의 죽음 방식대로 멋있고

다산은 또 다산답게 멋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연암의 방식도 좋고 다산의 방식도 좋다.

그래도 만약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연암을 택하고 싶다.

회혼식을 위해 온 친지들이 모인 잔칫날, 조용히 눈을 감은 다산은

분명 행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죽을 때 좀 더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죽고 싶다.

연암의 죽음이 꼭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연암의 죽음을 두고

높고 쓸쓸하게? 라고 썼다.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수다를 하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참 행복하고 아름다울 것 같다.

병원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는다는 건 최악이고

또는 온 가족들이 지켜보는 중에 죽는 것은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아름답지 않고 낭만적이지 않고 감동도 없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생각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죽을 때 정말 아름답게 죽고 싶은 낭만이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땐, 축복을 받았는 지 어땠는 지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을 하직할 때는 나의 바람대로 하고 싶다.

이 무슨 궁상스런 생각인가 싶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런 생각도 문득 한다.

예순이라는 나이가 가까워지니

이제 끝날 때를 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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