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토 Dec 06. 2023

경기도 다낭시, 친절한 시민들

고마워요. 정말 감사합니다.

다낭에 도착해서부터 이곳이 얼마나 한국 친화적인지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헷갈릴 정도로 공항 안은 온통 한국어로 가득했다. 베트남어를 잘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큰 어려움 없이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도 찾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환전을 하고, 택시 타는 곳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모든 안내판은 베트남어와 영어와 더불어 친절하게 한국어까지 적혀 있었다.


환전을 하러 간 환전소는 두말할 것도 없다. 줄줄이 이어진 환전소에서는 모두가 유창한 한국어로 고객을 모집하고 있었다. 수수료가 없다는 말을 크게 적어 놓은 곳도 있고, 현지 직원이 문 앞까지 나와 한국어로 환전 제일 잘해주겠다며 적극적인 어필을 했다.


우리는 많은 환전소를 지나 제일 끝에 있는 환전소에 들어갔다. 예쁜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은 직원들이 반겨주었다.


준비해 간 달러를 꺼내 베트남 돈으로 환전을 원한다고 했다. 계산기로 환전 금액을 보여주시고는 오케이 하니 현금을 꺼내 한 장 한 장 세어 주셨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백만 동 하나, 둘, 셋, 넷, 다섯... "

"오십만 동 하나, 둘, 셋, 넷, 다섯..... "

"십만 동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

"오만동 하나, 둘, 셋......"


환전해 주는 모든 돈을 한 장 한 장 한국어로 다 세어 주셨다. 숫자 셈이 약한 나보다 훨씬 더 유창한 솜씨였다. 순식간에 환전을 끝내고 나오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모두 저렇게 친절한 건 물론이고 한국어를 잘하는 것인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베트남 여행 1일 차, 첫 일정으로 그 유명하다는 한시장에 방문했을 때 일이다.


우리는 현지에서 옷을 사입을 생각으로 짐을 정말 단출하게 들고 왔었다. 그래서 첫날부터 중요한 일정은 쇼핑이었다.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인 만큼 가격 걱정 없이 마음껏 쇼핑을 하는 로망을 실현하러 가는 것이다.


먼저 한 시장 근처에서 현지 음식을 먹고, 너무 더운 시간을 피해 먼저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한시장은 건물 안에 있어서 그늘이 있기는 하나 에어컨이 나오는 것은 아니어서 너무 더운 시간에 가면 정말 매우 무지 덥다.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더 시원한 마사지를 받고 푹 쉬고 나오니 쇼핑하기 딱 좋은 시간이 되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한시장에 들어가 쇼핑을 시작했다. 시장은 부르는 게 값이라 흥정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호갱이 되기는 싫은지라 미리 유튜브로 괜찮은 가게를 몇 개 보고 갔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렸다.

"망고 두 개 3만 동~"

"크록스 16만 동~"


우선 점찍어둔 옷가게를 찾아가 열심히 쇼핑을 했다. 마음에 드는 옷 가격을 물어보고, 사이즈를 말하면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아쉽지만 입어볼 수 있는 여건은 안 돼서 대충 몸에 대보고 사이즈를 정해야 한다. 그래도 가격이 싸니 현지에서 대충 입을 생각으로 티셔츠와 원피스 등 여러 옷을 구입했다.


여기서도 옷을 고르고 사는 내내 영어보다는 한국말을 더 많이 쓴 것 같다.


나 : "이거 라지 얼마예요?"

상인 : "하나에 오만동."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시장 안이 너무 덥다는 거였다. 좁은 시장 골목에 한국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다들 나와 같은 유튜브를 보고 온 건지 유독 그 옷 집에 한국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렸다.


그 와중에 사람들을 비집고 옷을 고르려니 이건 뭐 백화점 마감 세일에 마지막 남은 물건 하나를 손에 넣기 위해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전략적으로 한 사람씩 먼저 옷을 고르기로 했는데, 내 옷을 먼저 다 고르고 이제 남편 옷을 고를 차례가 되었다.


먼저 계산을 마친 옷을 한 아름 안고 남편이 골라오는 옷을 봐주고 있는데 순간 귀가 먹먹해지면서 앞이 안 보이고 너무 어지럽기 시작했다.


방금 산 옷을 한 보따리 안고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서 있다가는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호흡도 힘들어지고, 앞은 어지럽고, 그 더운 곳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급하게 남편에게 내 상태를 알리고는 사람 많은 그곳을 도망치다시피 벗어났다. 옷 집은 2층에 있었는데,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다리가 후들거려 잠시 벤치에 앉았다. 호흡은 더 가빠지고, 자꾸 눈앞이 깜깜해지는 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는 남편의 재촉에 다시 일어나서 걷기 시작하는데 도무지 더 이상 한 걸음도 더 뗄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앞이 흐려져 거의 쓰러지다시피 어딘가에 앉았다. 앞이 깜깜하고, 호흡이 가쁘고,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먼 타국까지 와서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 조차도 너무 놀라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조그만 간이 의자에 앉아 겨우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데 주변의 상인들이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분들에게 남편이 한마디 했다. "have a baby."(아이를 가지고 있어요.) 문법에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상인분들 모두가 "Oh..!!"라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알고 보니 내가 앉은 곳은 망고젤리와 각종 간식거리를 파는 코너의 어느 아주머니 상인의 의자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온통 아주머니뻘로 보이는 상인 분들이 많았다.


고꾸라지다시피 앉아있는 내 눈앞에 갑자기 물 한 컵이 내밀어졌다. 덥고 지쳤던 나에게 단비 같은 생수였다. 물을 한 모금 마시니 동남아 특유의 향신료 향이 났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물을 한 컵 다 마셨다.


그러고 나니 곧바로 눈앞에 시원한 오렌지 주스 한잔이 내밀어졌다. 내가 의자를 뺏어 앉은 그 아주머니 상인이 주신 거였다. 오늘 짠 프레시 오렌지 주스라며 본인의 텀블러에서 종이컵 한가득 따라주셨다. 고맙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입에 넣었는데 한 입 먹자마자부터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으니 나에게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주신 아주머니는 곧바로 남편에게 내 등을 쓸어내려 주라며 약간의 역정(?)을 내셨고, 또 맞은편 아주머니는 남편 손에 부채를 쥐어주며 나에게 부채질해 주라고 했다고 한다.


남편이 부채질을 시원찮게 하자 나에게 오렌지 주스를 내미신 아주머니는 본인이 직접 부채를 뺏어들 고는 내 정면에서 아주 시원~하게 부채질을 해주셨다. 더워서 그런 거라며 여기가 매우 덥다며 아주머니끼리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내 귀에 들렸다.






물 한 잔과 시원한 오렌지 주스 한 잔, 그리고 아주머니의 시원한 부채질, 등을 쓸어내려주는 남편을 향한 주변 상인분들의 엄마 같은 잔소리가 더해져 나는 점점 기운을 차려갔다.


흐렸던 눈앞이 서서히 보이고, 호흡이 돌아오고, 어지럽던 머리가 점차 안정되어 갔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내가 상인 분의 의자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여러 번 말을 하고는 그곳에서 나왔다. 얼른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에게 본인이 판매하시는 망고젤리도 하나 먹으라며 주시는데 차마 미안해서 그거까지 받지는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거기서 망고젤리 얻어먹을게 아니라 감사의 의미로 젤리를 박스째 사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미처 그럴 생각조차 못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사람 많고 후덥지근한 곳에서 순간 당이 떨어져서 그랬던 것 같은데 아주머니 상인분들의 살뜰한 보살핌 덕분에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진짜 덕분이다. 


나도 남편도 처음 겪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만 하고 있었지 해결책을 몰랐다. 한시장 상인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그러다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일을 겪은 후 나와 남편에게 베트남 사람들은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되었다. 특히 한시장의 망고젤리 코너 아주머니들.


낯선 이방인의 어려운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 건지 아주머니 뻘이라서 그런 건지 당시 내가 겪었던 힘듦을 너무나도 잘 이해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언어가 잘 통하진 않았지만 그분들의 말투, 눈빛과 제스처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게 너무 잘 느껴졌다. 그래서 그때의 일은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하다.


여행 중 부모님과 언니들이 있는 가족단톡에도 베트남 사람들 다들 너무 친절하다고 몇 번이고 칭찬을 했을 정도니. 나의 베트남 사랑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경기도 다낭시, 친절한 시민들

고마워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전 04화 10주 차 임산부의 새벽비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