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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Nov 15. 2023

3년 만의 신혼여행

제주도 신혼여행의 한

무엇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바로 신혼살림과 신혼여행이었다.


 1시간 만에 끝나버리는 결혼식 세리머니에 많은 돈을 쓰기보다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쓰고 누릴 것들에 대해 돈을 쓰고 싶었다. 예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또한 7년이라는 오랜 기간 연애를 했지만 함께 해외를 나가본 적은 없어서 우리의 첫 해외여행이 될 신혼여행에 대해서도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신혼여행지로 어디를 갈지 고민 끝에,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발리로 결정했다. 여유롭고 한적한 휴양지의 느낌을 물씬 느끼고 싶어서였다.


우리가 선택한 리조트는 발리의 풀빌라 리조트. 스몰 럭셔리의 노키즈 리조트였다. 오로지 성인들만 숙박이 가능해 가족단위의 북적거림 보다는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리조트라고 여행사 직원에게 들었다.


신혼여행의 오붓함과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원했기에 우리에게 딱 맞는 숙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한 후에는 매일 숙소의 사진을 찾아보며 그곳에서의 시간들을 상상해보곤 했다.


따뜻한 나라에서 여유롭게 일어나 침대 바로 앞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조식도 먹고, 낮잠도 즐기다, 공용 수영장으로 나가 사진도 실컷 찍고, 인근 비치 클럽에 가서 맛있는 음료와 음식을 즐기며 해변을 누리고, 저녁엔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스페셜 디너를 먹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상상.


결혼식 준비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신혼집 꾸미기에 한창 바쁜 와중에도, 몰아치는 업무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에 대한 기대는 자꾸만 커져갔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무엇보다 일찍이 신혼여행에 대한 예약을 모두 마쳤기에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결혼식 날짜가 다가온다는 압박감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신혼여행 날짜도 다가온다는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앞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2020년의 코로나는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도 도무지 사그라질 기미가 안보였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되어만 갔고, 그에 따라 국외로 가는 항공기들도 연달아 결항되어 갔다.


아예 해외 입국자를 받지 않고 봉쇄를 하는 나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여행사와 지속적인 연락을 해오다 결국 우리가 예약했던 항공기도 자체 결항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차라리 항공사의 자체 결항은 다행인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자체 결항 결정으로 인해 항공권 예약에 냈던 대부분의 돈은 환불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먼저 항공권을 취소했더라면 아예 환불받지 못했거나, 아주 일부만 돌려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항공권은 모두 환불 처리되고, 이제 남은 건 발리 리조트에 걸어둔 돈이었다.


리조트는 문을 닫지 않았기에 충분히 고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항공권 결항으로 그곳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어찌어찌 발리에 입국한다 하더라도 당시엔 해외에서 입국할 경우 2주간의 격리를 마쳐야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 남짓의 짧은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러한 점을 리조트에 충분히 설명해서 걸어둔 예약을 취소하고 이미 낸 돈을 환불받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우리의 신혼여행을 맡아준 여행사에서 리조트에 강력하게 어필하였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 항공기 결항 및 격리로 인한 숙박 불가는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을 거 기 때문에 리조트에서도 세계적인 코로나 시국임을 감안하여 예약 취소 및 환불 처리를 해주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었다. 많은 돈을 투자한 신혼여행이 비행기도 못 타본 채 돈만 버리는 짓이 될 뻔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여행사에 예약 대행에 따른 수수료만 조금 지급한 채 해외로 가는 신혼여행의 단 꿈은 종료되었다. 그래도 당시 이 어려운 상황을 잘 해결해 준 여행사에게도 참 고맙다. 줄줄이 여행이 취소되었기에 여행사에도 피해가 많았을 텐데 끝까지 책임지고 처리해 줘서 정말 감사하다.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리에겐 플랜 B가 필요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외국으로 가는 대부분의 항공 노선이 취소된 와중에 우리는 과연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북적이는 결혼식을 끝내고 단 둘이서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그런 신혼여행을 꿈꿨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정답은 정해진 듯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해외로 못 나가는 대신 선택한 곳은 바로 국내의 제주도였다.(혹은 국내의 다른 지역으로 여행 가는 경우도 있었다.)


제주도는 국내이긴 하지만 일단 비행기를 탄다는 점에서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가는 듯한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캐리어에 짐을 싸고,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 탑승수속을 하고, 원한다면 면세점도 즐기고, 잠깐의 비행이지만 하늘도 날아보고, 제주 공항에 도착해 길가에 심어져 있는 야자수를 보노라면 어딘가 낯선 휴양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그렇게 우리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제주도 신혼여행은 여행사를 낄 필요도 없었다. 직접 항공권을 예약하고, 원하는 호텔을 찾아 예약하고, 렌터카를 예약하니 여행 준비는 끝났다. 여행 일정은 빡빡하지 않게 보낼 생각이었던 터라 두 지역으로 나누어 잡았던 호텔 근처의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니 그래도 신혼여행이라고 나름 기대도 되고 즐거운 마음도 들었다.


제주도는 거의 10년 만이라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들도 많이 생겼고, 맛집도 많이 생겼고, 무엇보다 남편 될 사람과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설렘이 배가 된 듯하다.(신혼여행이니 닭살 멘트도 양해 바랍니다.ㅎㅎ)


제주도에서의 신혼여행은 역시나 즐거웠다. 해외를 못 나간 아쉬움보다는 그동안 바쁘게 일하랴, 결혼식 준비하랴, 신혼집 준비하랴 정신없었던 우리에게 주어진 꿀보다 달콤한 휴가였기에 하루하루 그 시간들을 즐기기 바빴다.


해외에서는 찍어도 결과물이 아쉽다는 신혼여행 스냅사진도 제주도에서 찍고, 우도에서 전기차를 빌려 섬을 크게 한 바퀴 돌며 온갖 맛있는 것도 먹고,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도 달려보고, 온수풀이 나오는 호텔 수영장에서 밤 수영도 해보고, 흑돼지야 딱새우야 땅콩아이스크림이야 해물라면이야 갈치조림이야 갈치회야 고등어회야 바비큐 파티야 모야모야 오만 맛있는 것은 다 먹고 다녔다.


먹을 걸로 뽕 뽑고 온 여행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조식부터 시작해서 너무 잘 먹고 다녔다.


거기에 10월의 제주도는 어딜 가든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서 전문 사진작가를 동반한 스냅촬영이 아니어도 핸드폰 카메라만 갖다 대면 그림이 나왔다. 덕분에 우리의 커플사진도 많이 건져서 왔다.






국내지만 알찬 신혼여행을 보내고 돌아온 우리는 그래도 언젠가 함께 해외여행을 꼭 다시 가자고 서로 다짐을 했다.


이미 신혼여행은 제주도 여행으로 마쳤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해외 신혼여행의 숙제가 남아있는 듯했다.


그렇게 다짐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시간은 흘러 흘러 결혼 3주년을 앞두고 있게 되었다.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우리가 결혼한 지 곧 3년이라니. 벌써?


그동안 코로나 상황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백신을 3회나 맞고, 그럼에도 결국 서로 번갈아가며 코로나에 걸리기도 하고, 마스크가 의무였다가 권고가 되기도 하고, 각종 모임이 조금 더 활발히 이뤄지며 점차 일상을 회복해 가는 상황까지 개선되었다.


이럴 때 타이밍을 잘 맞추기만 하면 해외 신혼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그런 시기들도 있었다. 실제로 나의 지인 중 한 명은 코로나 시국에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국가별로 상이했지만 백신 접종 확인서와 몇 시간 내의 PCR 검사 결과지만 있으면 격리 없이 출입국이 가능한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천운을 타고난 것인지. 정말 부러웠다. 축하할 일인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쓰리기도 했다. 신혼여행지를 고민할 당시 몰디브도 후보군에 있었던 터라 더욱 부러웠나 보다.


이후로도 결혼식을 올리는 지인들을 보면 하나 둘 해외로 신혼여행을 많이 가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도 점차 나아지며 이제는 위드 코로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백신 접종 확인서 및 PCR 검사서만 있으면 못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주변 지인들의 결혼 소식과 더불어 신혼여행 소식을 들을 때면 축하하는 마음과 동시에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 같은 우리의 신혼여행이 계속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우리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을 알기 때문에 다들 아이가 생기기 전에 꼭 둘이서 한 번이라도 해외여행을 갔다 오라고 많이들 말씀해 주셨다.


우리도 정말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와 여러 상황들로 해외여행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심지어 아무 기반 없이 아파트 분양권을 덜컥 사버린 터라 이후로는 내 집 마련을 위한 돈 모으기에 둘 다 집중하고 있어서 해외여행은커녕 여름휴가로 제주도 여행조차 사치인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흐르다 드디어 결혼한 지 3년째 되는 해. 더 이상은 우리의 해외여행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당시 나는 사서직 공무원 시험에 필기합격을 하였고, 남편은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성공했다. 서로에게 좋은 소식이 있는 그때 우리는 그동안 고생한 우리에게 주는 보상으로 해외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드디어, 큰 결심을 한 해외여행이었다.


결심을 했으니 이제 날짜만 잡으면 되는데, 그 날짜 잡는 일이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우선 여름휴가를 가장 많이 가는 8월은 남편이 새롭게 이직한 직장에서 투입된 프로젝트의 마감이 다가오는 시기라 너무 바빠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남들 다 여름휴가를 다녀왔을 즈음 우리는 조금 늦은 여름휴가를 가기로 계획해 봤다.


남편이 6월에 막 이직한 터라 두 달 뒤 바로 여름휴가를 쓰는 것에 대한 눈치도 보여서 최대한 남들보다 늦게 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남편의 바쁜 일이 끝난 후 그리고 나의 면직과 면접이 모두 끝난 후인 9월 중순쯤으로 날짜를 생각해 봤다.


그런데 웬걸, 8월이면 모두 끝날 것 같았던 남편의 프로젝트 일정이 자꾸 미뤄지더니 9월까지로 연장돼 버렸다. 그래서 오히려 8월은 조금 한가하게 지나가고 진짜 바쁜 일은 9월부터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월 중순으로 예상했던 여름휴가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다시 날짜를 미루어 계획을 잡아야 했다.


다행히 항공권과 숙소를 미리 잡아둔 것은 없어서 일정을 미루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직 남편 회사에서 여름휴가 일정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한 상황이어서 미리 예약을 해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시 여름휴가 일정을 고민하던 와중에 10월이 넘어가면 혹시 내가 사서직 공무원으로 먼저 발령이 날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우리 지자체는 보통 10월에 신규임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9월 말로 다시 휴가 계획을 잡았다. 날짜를 잡았다 해도 그냥 우리끼리 말로 정해본거지 남편 회사에서 휴가 일정을 승인받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프로젝트 일정이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기에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건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사서직 공무원에 최종합격 하여 임용등록까지 무사히 마쳤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알게 된 소식은 올해 10월의 신규임용은 매우 소수만 날 것이고, 대부분은 내년 1월에 임용될 거라는 것이었다. 나 또한 내년 1월에 발령이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정확한 건 발령 나봐야 아는 거지만.)


그래도 이 정보 덕분에 여름휴가 일정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놨다. 어떻게든 9월 안에 다녀와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는데 발령이 천천히 날 거라 하니 여름휴가 일정을 여유롭게 잡아도 될듯해 보였다.






그래서 이젠 오로지 남편 회사 일정에 맞추기로 했다. 나는 잠시동안은 자유의 몸이니 어느 날이든 괜찮았다.


그런데 남편 회사는 여전히 바빴고, 지금의 프로젝트가 정확히 언제 끝날지, 끝난 후라도 휴가는 언제 받을 수 있는지는 미궁인 상태였다.


3년 만에 드디어 해외여행을 가보자고 마음먹었는데 어떻게 날짜 하나 잡는 것조차 이리 어려운지. 게다가 일정도 휴가 일수도 확실하지 않으니 어느 나라를 갈지도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만, 베트남, 발리, 일본 등 우리에겐 여러 후보지가 있었다. 다만 휴가 일정이 정해져야 어디를 갈지 확실히 정할 수 있었다.


나는 이왕 가는 거 휴가를 최대한 많이 내서 제일 멀리 가보고 싶었다. 3년 만의 신혼여행인 만큼 처음 계획했던 발리를 다시 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후에는 또 언제 다시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남편은 회사 사정상 3일 이상 휴가 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여름휴가라고 받은 게 3일이기도 했고, 그 외는 연차를 붙여서 써야 하는데 한 달을 채워야 겨우 나오는 소중한 연차 하루를 휴가에 다쓸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직항으로 한방에 갈 수 있고 짧은 일정으로도 여행이 가능한 가까운 국가를 원했다.


그렇게 서로 휴가일수와 여행 국가에 대한 의견이 상이한 채 시간이 흘러 흘러갔다.






그렇게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채 9월도 하루하루 지나가던 어느 날, 한없이 미뤄지기만 하고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현 상황이 조금 갑갑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에 가서 여행 가이드책을 읽어보다가도, 핸드폰으로 월별 추천 여행지를 검색해 보다가도,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는 우리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화도 났다.


이런 날이 지속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들어버렸다. '아, 우리는 역시 안되나 봐. 우리가 해외여행은 무슨, 우린 그런 거 못하는 사람들인가 봐.'


계속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또 기대하고 실망하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이 모든 게 희망고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기대하는 것조차 하기 싫어졌다.


그리고 남편은 회사 일 때문에 바쁘니 여행 관련 정보는 내가 나서서 알아봤는데, 알아본 여행지에 대해 신나서 남편에게 설명할 때마다 조금은 시큰둥해 보이는 반응에 마치 나만 이 여행을 갈망하고 원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남편에게 조금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큰둥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여행지를 갈 수 있을지 걱정한 거라고 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남편에게 우리 그냥 해외여행은 포기하자고, 아무래도 우리 못 갈 거 같다고, 나만 이 여행을 원하는 것 같고, 나만 계속 알아보고 다니는데, 난 이제 기대하는 것조차 지쳤다고, 그냥 가지 말자고 하며 조금 모진 말을 내뱉었다. 남편은 당황해하더니 이내 조금 화가 난 듯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왜 안 간다는 것이냐. 왜 너만 이 여행을 원한다고 생각하냐. 나도 원한다.


그렇게 서로 여러 말이 오가다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남편도 지친 목소리로 그래 그냥 가지 말자고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본인 회사 일정 때문에 자꾸 휴가 계획이 틀어져서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을 내내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어떻게든 휴가 일정을 잡아보려고 새롭게 이직한 회사에서 일도 열심히 하고 상사에게 어필도 열심히 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내가 저렇게 무책임하게 말해버리니 실망감과 허무함이 몰려온 듯했다.


한바탕의 소란이 지나고, 며칠 후 서로 진정한 채 다시 대화를 했다.


우선 아직까지도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 계획은 잡지 말고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추후에 휴가 일정이 확실히 정해지면 그때 갈 수 있는 나라를 가자고 했다.


나도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마음 편했다. 어딘가를 정해두고 계속 전전긍긍하느니 그냥 여유를 가지고 지내다가 나중에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도 한결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9월의 혼란도 지나고 10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남편 회사의 프로젝트도 서서히 마무리되어 가는 단계가 되었다. 프로젝트 마감을 코 앞에 두고 선임 담당자의 퇴사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사태가 진정되고, 새로운 후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니 남편도 슬슬 다시 휴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상사에게 뒤늦은 여름휴가를 요청하며 코로나로 인해 신혼여행도 제대로 가지 못한 점, 그래서 이게 3년 만의 신혼여행이나 다름없는 점을 열심히 어필했다고 한다.


사실 상사 입장에서는 그런 개인 사정까지 일일이 챙겨줄 의무는 없지만, 그동안 남편이 급하게 투입돼서 빠듯한 일정에도 야근까지 불사하며 열심히 해주고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가 무사히 마무리된 점에 대해 고마워서 이번에는 대직자를 구해서라도 어떻게든 보내주겠다는 확답을 들었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우리는 늦은 여름휴가 겸 늦은 신혼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10월 초, 총 6박 7일의 나름 긴 일정으로.


휴가는 4일밖에 쓰지 않았지만 중간에 끼인 공휴일 덕분에 일주일의 휴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휴가 일정 중 결혼 3주년이 껴있어 더욱 뜻깊은 여행이 될 터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휴가가 확정되자 우리는 부랴부랴 항공권과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를 갈지도 이때 정했다.


우리의 기준은 직항으로 갈 수 있고, 비행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며, 휴양지 느낌이 나고, 물가가 저렴한 곳이었다.


그리하여 정해진 곳은 베트남 다낭이었다.


3년 만의 신혼여행 드디어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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