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 49인 제한
우리는 21살 크리스마스이브날 서로를 처음 만나 이후 연애를 시작하고, 장장 7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서로가 학생일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백수인 시절을 함께 거치고, 각자 나름대로의 안정적인 직장을 잡으니 얼마 안 가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연애 때부터 내 나름의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2020년 10월 10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 그 이유는 단순했는데 날짜가 이뻐서이다. "20201010" 기억하기 쉬운 숫자이니 앞으로 살면서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2020년은 우리가 28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니 결혼하기 적절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로망일 뿐, 20대 초중반의 나의 상상이 진짜 현실이 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
사실 28살에 결혼을 할지 30살에 결혼을 할지에 대한 내적 갈등도 있었다. 요즘 추세로는 20대 후반의 결혼이 빠른 듯한 느낌이라 서두르지 않고 30살에 해도 충분히 괜찮은 정도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 서로를 잘 만나오고 있었고, 이미 우리 두 사람의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기 시작했고, 함께할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도 있었기에 어차피 시간이 더 지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닌 서로와 결혼을 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우리는 더 이상 결혼을 미루지 않고 하기로 결정했다.
일찍 결혼해서 신혼생활을 즐기다가 아이는 천천히 가지고 싶은 이유도 한 몫했다.
그렇게 2020년 연초에 서로 결혼에 대한 다짐을 하고는 날짜를 고민했다. 언제가 좋을지 상의하다가 내가 조심스레 2020년 10월 10일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현 남편은 안 그래도 내가 그 날짜에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알고 있냐고 놀라 물으니, 내 휴대폰의 캘린더가 자신의 휴대폰 캘린더와 연동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주 옛날부터 표시해 둔 2020년 10월 10일의 일정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일정은 바로 '이날 결혼하고 싶다.'였다.
캘린더가 서로 어떻게 연동된 것인진 아직까지도 미스터리지만,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결혼식 날짜를 정하게 되었다.
날짜를 정하고, 각자의 집에 결혼 계획에 대해 알렸다.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의 일에 사사건건 터치하는 분들이 아니셔서 그런지 결혼식 날짜도 무난히 오케이였다.
그렇게 자연스레 2020년 10월 10일 결혼식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2019년 연말부터 불어닥치던 코로나의 여파가 2020년 10월에 예정되어 있던 우리의 결혼식까지 그렇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칠 줄은.
결혼식 준비는 제법 순조로웠다. 여유를 가지고 시작한 터라 조급할 것도 없었고, 양가에서도 협조를 잘해주셔서 크게 힘든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결혼식을 치러본 사람은 알다시피 하나하나 선택의 연속이었고, 준비는 해도 해도 끝이 안나는 것 같았다.
<결혼식 준비 예시>
예식장 잡기, 웨딩반지 선택, 남편 예복 준비, 스튜디오 촬영, 본식 드레스 선택, 상견례하기, 신혼집 구하기, 가전&가구 정하기, 청첩장 주문, 결혼식 순서지 주문, 결혼식 유튜브 생중계 업체 선택, 지인들에게 청첩장 돌리기 등등.
결혼 준비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는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결혼식 일주일 전에 생전 걸려본 적도 없는 장염에 걸린 걸 보면 그동안의 과정에서 신경 쓸 일이 꽤 많았다는 뜻이겠지.
그중에서 우리를 가장 신경 쓰이게 했던 것은 바로 이놈의 코로나였다. 결혼식을 준비하던 아주 초기만 해도 코로나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다는 정도였다. 그 기세와 정도가 무시무시하다고는 들었지만 기존의 다양한 바이러스들처럼 몇 달간 유행하다 금방 사그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마스크를 쓰는 것은 유난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조금은 가볍게 생각했다. 모두가 그랬겠지.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봄이 오고, 여름이 와도 코로나의 기세는 좀처럼 꺾일 줄을 몰랐다. 오히려 가을바람을 타고 추석 명절을 지내며 코로나 바이러스는 더욱 활발히 활동했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기 전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안하게 1단계와 2단계를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과연 결혼식에 몇 명이나 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1단계라 하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결혼식에 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막판에 결정한 것이 결혼식 유튜브 생중계였다. 보통의 결혼식에서는 준비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는 주말 동안 결혼식이나 장례식, 각종 모임 등에 다녀와 코로나에 걸리면 상당히 눈치가 보이던 시절이었다.
청첩장을 돌릴 당시에도 직장동료와 지인들에게 결혼식에 와달라고 하기 미안하고 눈치가 보여 꼭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멀리서 축하해 줘도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정말 마지막 선택으로 유튜브 생중계를 결정했다. 지역이 멀어서, 집에 아기가 있어서, 단체 합숙생활을 해서, 병원에서 근무해서, 코로나 확진자 동선과 겹쳐서 등 다양한 이유로 결혼식 현장에 함께 참석하기 어려운 지인들을 위해 마련한 방법이었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고민도 되었지만, 결혼식이 끝난 후 유튜브 생중계로 결혼식을 잘 봤다는 지인들의 축하메시지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지역이 멀어서 못 오는 사람들에게는 유튜브 링크만 알려주면 되었기에 코로나 시국에 결혼식을 하는 나도 마음이 한결 편했다.
덕분에 집에서 고양이와 함께 결혼식을 유튜브로 봤다는 귀여운 후기 사진도 받아볼 수 있었다. 고양이와 함께 즐기는 결혼식이라니 너무 재밌지 않은가.
덤으로 유튜브 촬영 영상을 기념으로 간직할 수 있어서 내 결혼식이지만 정신없어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을 다시 돌려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만반의 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추석 명절을 기점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는 2단계로 격상됐다. 추석 바로 다음 주 주말에 잡혀있던 우리의 결혼식은 하객 49인 제한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는 강력했다. 기존의 1단계는 하객 수에 제한이 없는 반면, 2단계는 실내 50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제한이 있었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예식장에 들어올 수 있는 숫자는 신랑신부 포함 49명이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49인 이후로는 얄짤없이 예식장 문이 닫히는 바람에 예식장 문 앞까지 왔다가 식장에는 들어와 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린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다.
양가 일가친척만 해도 얼추 49인은 채워졌기에 우리의 결혼식은 본의 아니게 가족 위주의 스몰웨딩이 되었다.
거기에 신랑신부를 제외한 모두가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써야 했다. 양가 혼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녀들의 결혼식을 위해 예쁘게 분칠 한 얼굴에 마스크라니.
축가를 부탁한 사촌동생도 마스크를 쓴 채 노래를 불러야 해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텐데 끝까지 잘 불러줘서 아직까지도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혼식 기념촬영에도 신랑신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마스크를 벗을 수는 없었다. 지인, 일가친척, 직계가족 할 것 없이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두가 마스크를 쓴 채로 기념촬영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지인들과의 기념촬영은 지금 앨범으로 봐도 정말 웃기다. 인원수 제한으로 직장동료와 지인들 대부분이 예식장에 들어오지 못해서 결국 사진에는 남편의 친구 몇 명과 부케를 받은 사촌오빠까지 해서 오로지 남자만 6명이 전부였다.
다들 맞춘 듯이 검은색 옷을 입고 와서는 마치 신랑신부와 저승사자 6명이 함께 사진을 찍은 듯했다. 오죽했으면 보다 못한 촬영 기사님이 잠시만 빠르게 마스크를 벗고 사진 한 장만 찍자고 할 정도였을까.
말로만 들으면 절망적인 것 같은 결혼식의 모습이지만, 이렇게 된 거 그냥 즐기기로 마음먹은 터라 당시에는 그 상황조차 너무 웃기고 재밌었다. 그리고 결혼식을 해본 모두가 공감할 테지만 일단 결혼식이 끝났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난 후 꽉 차지 않았던 예식장의 모습에 가끔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우리 결혼식 어땠냐고 사람이 너무 적어서 아쉽지는 않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남편은 전혀 아쉽지 않다고, 결혼식을 올린 우리 둘의 마음이 중요한 거지 하객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리고 자신은 하객 수가 적어서 조용히 결혼식에 집중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누구 하나 떠들지 않고 딴짓하지 않고 우리 부부의 결혼식에 집중해 줬던 하객들이 떠올랐다. 소수로 진행되는 거라 부산스럽지 않았고, 어수선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보면 하객들이 신랑신부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주변의 반가운 지인들과의 대화에 집중할 때가 더 많아서 예식 내내 식장 뒤편은 부산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미안하게도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식은 본의 아니게 우리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그런지 하객들의 온전한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용하고 따뜻한 결혼식의 기억을 품게 되었다. 이래서 사람이 생각하기 나름인가 보다.
나와 함께 하객 49인의 결혼식을 치른 남편이 충분히 만족하고 좋았다고 하니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그래, 나만의 결혼식은 아니었지. 결혼식을 포함하여 앞으로 함께 인생을 걸어갈 나의 동반자가 그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하니 내 마음도 덩달아 괜찮아지는 마법을 느꼈다.
그렇게 코로나 시국의 결혼식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이제 신혼여행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