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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이 Jul 07. 2020

일본 대학원, 멍멍이도 송아지도 하는 박사

사람도 못하고 있는데요?

개나 소나 :  대체로 '적합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어울리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관계가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 출처 :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개나 소나'라는 표현이 있다.

개나 소도 할 만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인가도 싶고 개나 소여도 성공할 거란 뜻인가도 싶은 표현이다.


일본의 박사과정(일본어로는 박사 후기 과정이라고 한다)은 보통 3년 혹은 4년 코스로 나뉘어 있다.  

나는 이 연구실에 2016년에 3년 코스로 입학했으니 진즉에 졸업했어야 하는 년도 수를 채우고도 

아직도 논문을 내지 못해 졸업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수료증만 받은 상태이다.


그렇다, 개나 소나 하는 박사를 아직도 못 받고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나이다.


정해진 코스 기간은 예전에 끝냈지만 논문을 언제쯤 쓸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쯤 되니 우리 지도 교수님도 모르는 거 같다.

(사랑해요 교수님, 우유빛깔 교수님, 영원해요 교수님)


이공계에서 학위를 해봤다면 혹은 할 생각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 세계에선 데이터란 논문이라는 내 자식이 되거나 내 시간을 연료 삼아 그저 어디론가 떠나가 버리는 것이다.


박사를 맨 처음 시작했을 때는 NCS(Nature, Cell, Science로 대표되는 메이저급 논문들을 일컫는 줄임말)급까진 아니어도 IF 15점 이상대에는 낼 수 있겠지 하고 시작했다.

아, 그렇다. 마치 중, 고등학생 때 서포카연고는 그냥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크리닝부터 시작한 나의 경우, 마땅한 화합물과 단백질이 내 어설픈 낚시에 걸려들어주지를 않았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연구를 하는 다른 그룹들(Scripps의 C 모 그룹이라거나 UCLA의 N 모 그룹이라거나..)이 내는 논문을 보며 얘네는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만든 거지? 하고 화를 내다, 또 얘네구나 하고 타협도 하다가 결국엔 나는 안될 거야 하는 우울에 빠져든다


박사 과정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지만,

어느 정도 풀 수 있는 문제를 받아야 풀어야지 싶지

인생이 꼬이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 문제를 받으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졸업 시기에 관한 질문을 아주 가볍게 톡톡 나에게 던지곤 한다. 나는 개구리가 아니라 날아온 돌같은 말에 맞아 죽지는 아니하나 잔잔했던 마음이 말 몇마디에 파문이 일듯 심란해지고 만다.

정작 정말 나와 가까운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은 그리 말하지 않는걸 보면 대충 각이 나오는 가볍고도 무거운 말들.


그 와중에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일단 연구실엔 나와있는 나에게 나는 기특하다고 커피 한잔 쥐어주며 토닥여주는 하루였다.

몇 년 뒤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고 또 믿지만 지금의 나에겐 어서 졸업해야지, 언제 졸업하니 같은 말보다 손에 들고 있는 커피 한 잔이 더 힘이 되어준다.


혹자들은 개나 소나 하는 박사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 개나 소나 하는 박사 어디까지 해보았냐고.


개나 소로 사람을 폄하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타인이 모르는 각자의 전투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존중과 예의를 갖추어 대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그 졸업이라는거 내가 제일 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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