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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이 Jul 06. 2020

미혼, 무직의 30대 : 빈티지 와인을 꿈꾸던 장기연애

더 이상 네가 좋지 않아. 너를 위해 무얼 해주고 싶다거나 같이 무얼 하고 싶지 않아.


햇수로 7년간 나의 연인이었던 사람과의 관계의 마침표는 몇 줄의 카카오 톡이었다.



동갑내기였던 우리는 코흘리개 같던 중학교 시절부터 알던 사이로

관계가 시작될 때 우리는 대학생이었고 관계가 마침표에 더 가까워지고 있을 때 그는 직장인, 나는 여전히 불확실함을 확실하게 달리는 학생이었다.


까지 쓰고 한 동안 모니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사귀는 동안의 우리는 어땠었는가, 헤어지고 나는 어땠었는가를 떠올려보려 하였으나

어느 날 그와 관련된 모든 걸 남김없이 정리한 웹하드처럼 기억도 지워진 느낌이다.

하긴 헤어지고 5년 즈음 지났으니 기억하고 있는 게 더 이상하겠단 생각도 든다.


장기 연애를 한 이유가 '사랑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공주님과 왕자님이 만나 행복하게 사는 동화와 달리

현실의 내 연애가 길어진 이유는 포기와의 합의였다.


나이가 많은 데 헤어지고 누군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포기하고

만나온 시간이 아까워서 마치 감가자산에 올인하는 것과 같은 짓을 했다.


헤어짐에 울고 불던 밤을 거쳐,

내가 나를 잘 대해주지 않으면 남도 나를 제대로 대해 주지 않는다는 걸 배우며,

나를 챙겨 혼자 오롯하게 무언가를 해나가는 법을 배웠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한 명과의 장기연애는 하지 않고 다양하게 많은 사람을 만날 것 같지만

그래도 덕분에 나와 맞는 사람을 보는 눈을 배운 것도 같다.

(ex : 1:1로 여사친과 술 마시는 남자는 믿고 걸러야지.)


주변에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 모습을 보면 대학에 떨어졌을 때 처럼 어딘가 뒤쳐진 느낌이 들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는 있으면서 직업도 주변에 만날 사람도 없는 사람인 주제에

나는 '나'로 살 수 있음이 감사하고 앞으로 더 행복해질 거란 생각을 한다.


헤어지고 시간이 이 만큼이나 흘렀으니 이 글을 읽을, 혹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누군가에게

장기 연애하고 헤어져도 누군가를 다시 만나 잘 지냅니다! 같은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장기 연애하고 헤어져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 하고 글을 쓸 수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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