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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이 Jul 06. 2020

미혼, 무직의 30대 : 인간관계 손절의 룰

전에 언급한 대로 나의 좁은 인간관계는 나름의 룰을 따라 정리되어온 결과이다.

30대가 되어 더욱 망설임 없이 인간관계를 정리하게 도와주는 나의 룰.

혹시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룰에 따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 글에 투영되고 반영되는 내가 좀 더 내가 바라는 나이길 바라며

앞으로 이 글을 퇴고하고 또 퇴고할지도 모르겠으나,

타인은 내 글처럼 내가 퇴고할 수 없으니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는 고치려 하지 않고 떠나기로 정했다.



양심과 법 사이 : 양심에 어긋나거나 불법 행위를 하는 사람은 NONONO

유학 오기 전에는 유학생은 모두 돈 많은 사람들이라는 이미지였다.

내 상상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거액이 필요한 미국이 아닌 일본이라 그런지 그렇게 풍족하지 않은 유학생도 존재했다.

고 일단 누군가를 위한 변명을 미리 적어두겠다.


(*일본도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가연성 쓰레기를 버릴 때 쓰레기봉투를 사서 버려야 한다.)

어느 날, 여기서 만났던 유학생 집에 놀러 갈 일이 있었는데 나를 마중 나온 길에 버스 정류장 쓰레기 통에 가정 쓰레기를 가지고 나와서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깜짝 놀라서 왜 여기에 집 쓰레기를 버리는 거야?라고 물으니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 플라스틱을 적게 써야 한다. 같은 이유를 대며 자신의 행동이 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글쎄..

아무리 풍족하지 않은 유학생이라도 행위 자체도 불법이었고 양심도 없게 느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 : 내 좋은 일에 기뻐하지 않고 내 힘듦에 공감해주지 않는 사람은 NONONO

한국 어느 기업에서 사장단급이 와서 같이 식사도 하고 선물도 주는 취업성 이벤트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장소는 도쿄의 어느 유명 호텔이었고 나는 이벤트가 개최된 호텔에 숙소를 받은 상황. 하룻밤 싱글 숙박비가 20만 원이 넘는 나름 고급 호텔이었다.

그 당시 친구들 단톡 방에 이야기를 했더니 '5성급 아니고 4성급이네?' 하며 이상하게 반응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냥 잘되었다고, 인터뷰 잘하고 오라고 축하해주는 게 그렇게 배 아픈 일이었을까, 그 친구 말대로 5성급도 아니고 4성급 호텔이었을 뿐인데.


이 친구한테 일본에 온 지 3개월쯤 지났을까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힘든 일에 퇴근길에 마트에 가며 전화를 걸었었다. 목소리를 들으니 감정이 격양되어 결국 엉엉 울었는데 '관두고 돌아와.' 같은 말을 들은 기억만 강하게 남아있다.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러 비자 연장이 필요해 1시간(결론적으로 왕복 2시간 이상) 거리의 출입국 관리소에 가는 길에 귀찮다고 했더니 돌아온 말은 역시 '관두고 돌아와.'였다.

만약 반대였다면 나는 '관두고 돌아와'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몇 번을 며칠을 생각해도 그리 쉽게 관두고 돌아오라고 할 수 없을 거 같다.


위의 상황들을 겪고 나니 이 사람은 내가 잘되길 바라지 않는구나. 하고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잘되길 바라지 않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처럼 나에게 해로운 일을 할 필요는 없으므로 일말의 여지없이 잘라내었다.


취향의 존중 : 우리 엄마도 안 그러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은 NONONO

나는 손으로 무언가 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이어리에 마음에 드는 펜으로 열심히 글을 쓸 때도 있고, 그림을 슥슥 그릴 때도 있고, 조물조물 먹는 걸 만들 때도 있다.

인터넷 서핑 중에 유리 펜이라는 일종의 딥펜을 보았는데 그게 예뻐 보여서 예쁘지? 살까살까? 하고 말했더니 사지 말라고 거의 1시간은 뭐라고 나에게 말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렇다, 이 친구가 위에 몇 문장에 거쳐 묘사된 친구다.)

내가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내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일말의 여지가 없었다.


유유상종의 늪 : 나는 저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 NONONO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하며 존경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지금의 지도 교수님이라고 말할 거 같다. 일단 겉으로 보이는 교수님은 사고가 올바르며(안 좋은 일은 좋게 바꿔서 생각하기, 항상 즐거운 도전을 하기-외국에서 해당 외국어로 프레젠테이션 시작 2페이지 정도 발표하기 같은, 자식에게 부끄러운 짓 하지 않기를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시는 분) 가정에 충실하고(주말마다 가족끼리 시간 보내는 게 좋은 딸 바보이십니다..),  돈도 많이 번다.(!)

이 경우의 존경은 되고 싶다는 단어와도 비슷한 것 같다.

나는 교수님처럼 되고 싶으니 교수님이 읽는 책을 따라 읽고 교수님처럼 생각해보려고 한다.


반대로 '아,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인상을 받은 사람은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또한 별로라고 생각한 사람을 주위에 두고 있는 사람도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위에 열심히도 언급된 친구 A 외에도 다른 친구 B 가 한 명 더 있었으나, 그 친구 B가 A랑 굉장히 친했다.

친하다는 것, 가까이 있다는 건 결국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지금은 A, B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3명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고운 꽃과 나무처럼 소중한 내가 되고 싶은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 '나'라는 정원을 정성 들여 가꾸면

언젠가는 나도 내가 되고 싶던 모습에 좀 더 가까워져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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