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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이 Jul 09. 2020

일본 대학원, 인생만사 새옹지마

유학길에 오르고 남의 돈으로 어딘가에 갈 첫 번째 기회는 한 달에 18만 엔짜리 장학금의 최종 면접이었다. 신칸센 왕복과 호텔 숙박을 제공받고 고급 호텔에서의 면접을 치르고 돌아왔지만 결과는 불합격. 소식을 전하자 교수님은 나한테 '왜 면접에서 떨어지지, 문제네.'라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여 죄인처럼 대답하고 오피스를 나온 나는 복도 어느 한 구석에서 한동안 울었던 거 같다.


그리고 한 번의 계절이 흐르기도 전에 나는 교수님 앞에 20만 엔짜리 장학금 합격 통보서를 들고 올 수 있었다.

'교수님, 이제 저 RA 더 안 해주셔도 돼요! 저 붙었어요!' 하고 교수님께 말하자 교수님은 마지막의 RA 금액을 장학금 첫 달과 겹치게 해 주시고 선물이라고 그냥 받게 해 주셨다.

몇 번의 계절 뒤에는 불합격의 면접을 치렀던 고급 호텔에 숙박을 지원받기도 했다.


만약 그때 한 달에 18만 엔 장학금에 합격했다면 20만 엔 장학금엔 지원도 못했겠지.

인생이 얼마나 알 수 없는지 알 수 있는 나의 작은 유학 에피소드이다.



내 사수는 4년 코스에 맞춰서 학위를 받고 나름 좋은 논문을 내서 (내 기준) 아주 좋은 곳으로 포스닥을 떠났다.

사수가 떠날 때는 혼자 해야 한다는 게 어딘가 막막할 정도로 사수와 부사수로 지낸 1년간 많이 배우고 또 많이 배려도 받았다.


오늘 우리 방 애기 중에 한 명이 나한테 쪼르르 오더니 포스닥 하던 곳에서 내 사수의 이름이 더 이상 랩 멤버가 아닌 Alumni가 되어있던데요? 하고 알려주었다.

확인해보니 다음 포지션조차 적혀있지 않은 채 내 사수는 Alumni가 되어있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우리는 무슨 말을 나눴었더라, 

졸업이란 게 힘든 거네요. 같은 신변잡기적인 대화였던 거 같다. 


시간에 맞춰서 좋은 논문을 내고 연구비를 따서 아주 좋은 곳으로 다음 포지션을 차근차근 밟아갔던 사수를 부러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마 내가 외국에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돈 한 푼 쓰지 않고 오히려 저축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박사 과정인데도 지도교수가 어르고 달래주며 유학하고 있으니. 하지만 나는 또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아마 사람이란 게 자기가 처한 상황이 마냥 제일 힘들다고 생각해서겠지.

졸업 전은 졸업 때문에 힘들고 졸업을 하고 나면 또 그 나름의 고충이 있고.


지금의 힘듦이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그 덕분에 좋은 일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게,

지금 마냥 좋게 보이는 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고작 몇 년의 짧은 생으로도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세상이 다 내편이 아닌 거 같고 한없이 어둠 속에 가라앉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어도

우리는 다가올 좋은 날을 향해 한 걸음 내딛고 있는 중이라고 

지금의 어둠이 어둠이 아닐 수 있다고

나도 나의 사수도 그리고 모두의 앞날이 지금의 모든 것들 덕분에 좋은 일이 있었구나. 하는 날들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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