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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Jun 03. 2020

이사

운명 앞에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지.


아버지가 아직은 건강하시던 올해 초부터

나는 친정 옆으로의 이사를 계획해왔다.

아버지에게 내 돌봄이 더 필요한 시기가 된 것도 같았고 마침 큰 아이 학교도 그 지역으로 확정이 되었다.


"아버지, 우리 곧 이 동네로 이사와요."


점심을 함께 먹으며 내게서 이사 확정 소식을 들은 날, 아버지의 눈은 반가움에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조금 무리해서 마당 있는 주택으로 구했어요. 우리 거기서 같이 고기 구워 먹어요."


그 소식을 전하고 아버지와 헤어진 날, 그 날이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본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 집 동네로 이사 온 지 2주가 되어간다.


그동안 우리 집 짐 정리와 동시에 아버지 집의 짐 정리도 함께 했다.


아버지, 엄마가 내 나이 정도 되고, 내가 아주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들과 그 밖의 부모님 손때 묻은 살림살이 사이에서 간직할 것과 버릴 것을 분류하며 난 수시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모레, 유품 정리 업체를 불러 그 짐들을 모두 처분한다.


짐들이 빠지면, 아버지, 엄마도 나에게서 한층 더 멀어질 것만 같은 느낌.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20년간 그 집에 있던 짐들이 나의 '친정집'에서 떠나가는 모습을, 나는 온전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난,

친정 부모 없는 친정집 옆 집에서,

청승맞게 혼자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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