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병원은 어디인가
이미 어둠이 내린 저녁 C 병원 응급실 앞. 나와 남편이 서성이고 있다.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구급차 한 대를 기다리며. 두근두근두근. 드디어 일주일 동안 보지 못해 애가 타던 아버지 얼굴을 보는 건가. 아버지는 날 알아볼까? B병원에 가서 퇴원 절차를 밟은 뒤 사설 구급차를 같이 타고 아버지를 모셔오는 오빠는 아버지가 괜찮다고 전했다. 너무 몸을 움직여서 탈이라고 덧붙이면서. 그럼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그런 상태겠지?
거의 일주일 전 멍이 든 얼굴로 침상에 누운 채 B 병원 중환자실행 엘리베이터에 태워져 멀어지는 아버지를 무력하게 바라봤던 순간 이후로 가슴 속 지옥 같은 불길과 파도 같은 눈물이 내 일상을 집어삼켰다. 앞으로 새로운 병원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스럽지만 어쨌든 희망을 바라고 전원을 하는 게 아닌가. 아버지가 몸을 많이 움직인다는 건 그 희망을 갖는데 나쁜 조건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구급차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휴, 얼마나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치시는지. 오는 내내 시끄러웠다. "
오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먼저 내렸다. 드디어 아버지가 누운 침대가 내려졌다. 나는 일부러 아버지 얼굴이 잘 보이는 쪽으로 다가가 내 얼굴을 쑥 내밀며 소리쳤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누구야? 응? 내가 누군 줄 알아요?"
아버지의 눈이 약간 이상하다. 초점이 잘 안 맞는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응? 응?"
약간 어리둥절했다가, 이윽고 대답 없이 앓는 소리를 내셨다.
"아이고,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통증을 느끼고 있다. 당신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정신이 약간 혼미해 보여도 아버지는 괜찮은 것 같았다. 응급실 안으로 아버지가 실려 들어가자 오빠가 뒤를 따랐다. 나와 남편은 다른 입구를 통해 대기실이 있는 건물 안 쪽으로 들어갔다.
응급실에 있던 오빠가 대기실 쪽으로 나와서 말했다.
"내가 여기 창구에서 입원 수속을 밟을게, 너는 저 쪽 안내 데스크에 가서 보호자용 태그를 받아와."
안내 데스크 쪽에서는 신분증을 내고 이름을 적으면 보호자 출입용 태그를 주었다. 우리는 그걸 받아 한 명씩 번갈아 목에 걸고 보호자가 한 명 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응급실 안으로 순차적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만났다. 내 순서에 들어가서 본 아버지는 자꾸만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야, 나 좀 일으켜라. 나 화장실 좀 가야 해. 나 화장실 간다고!"
아버지는 이전부터 계속 매달고 있던 소변줄로 인한 잔뇨감에 괴로운 것 같았다.
"안돼요 아버지, 그냥 누워있어야 해요. 지금 움직이면 안 된대요."
"네가 날 일으키면 되잖아. 가자고, 화장실 가자고!"
"아이고, 안된다니까요! 지금 소변 보고 계신거에요. 좀 느낌 이상해도 그냥 계셔야 해요."
오랜만에 아버지 얼굴을 봐서 반가웠던 것도 잠시,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난리를 치는 환자를 진정시키려 하니 갑자기 온몸에서 땀이 삐질 흘렀다. 그동안 중환자실에서 왜 압박대를 했다는 건지 이해가 되었고, 몸이 불편한 엄마를 돌보며 힘들었던 기억도 잠시 스쳤다. 아버지를 응대하다보니 갑자기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한 나는 외투를 벗어 한쪽에 둔 뒤 아버지 옆으로 가서 정색을 했다.
"아버지, 내 말 좀 들어봐요. 여기서는 소변줄을 할 수밖에 없대요. 아버지 답답한 건 알겠는데, 지금 움직이면 안돼요. 알았어요? 조금만 참아요. 네? 그럴 수 있죠?"
아이를 달래듯 차분히 말해봤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난 그런 아버지를 위해 간호사에게 아버지의 소변줄을 뺄 수는 없는지 물어봤지만 예상대로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이후 침대에서 떨어질 것 같은 아버지가 불안해서 내 힘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성급히 나가서 오빠와 교대를 하기도 하고 다시 들어와서 아버지 상태를 살피기도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원 절차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갈 무렵, 간호사는 아버지가 일반 병실로 옮겨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제껏 중환자실에 자리가 있는 병원을 찾느라 고민한 건데 일반 병실로 옮긴다는 말에 황당함이 먼저였다. 간호사는 담당의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주었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기다려야 한다고 A병원에서 말했던 것, 이제까지 일주일 동안 B병원 중환자실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했지만 의사는 냉소적이었다.
"이제까지 중환자실에 계셨다고 꼭 그래야 하는 게 아니예요. 제가 볼 때는 일반 병실로 가도 되는 상태예요. 그리고 중환자실에 계셨으면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영양제 수액만 주신 건가요? (나는 잘 모르지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 환자분 일반식도 하셔야 할 것 같고요, 일단 내일 아침부터 죽 드시도록 할게요. 오늘 밤 일반 병실에 입원하신 후 내일 다시 얘기하시죠."
아버지가 일반 병실에 가도 될 상태라는 말은 반갑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면회가 금지되었던 아버지를 갑자기 간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우리는 당황한 채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엄마를 동성인 내가 많이 돌봤던 것처럼 아버지는 일단 오빠가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 바통터치 후 오빠가 응급실로 들어갔고 이동식 침대에 누운 아버지와 함께 다시 나왔다. 일반 병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나도 함께 오르자 오빠는 말했다.
"나는 못 알아보시는 것 같아. 너는 알아보시니?"
"그래? 나를 알아보고 막 화장실 데려가라고 떼쓰셨는데?"
나는 다시금 얼굴을 아버지 쪽으로 내밀며 말을 걸었다.
"아버지, 나 누군 줄 알죠?"
그때, 두리번거리던 아버지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더니 잠시 흠칫했다. 누군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는다. 얼굴에 천진한 미소가 만연하게, 활짝 웃는다. 그 웃음에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오빠와 나 모두 황당해하며 같이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딸은 알아보고 웃나 보네. 참, 나."
오빠는 서운해하면서도 그래도 자식 중 한 명은 알아보는 아버지 상태가 다행이라고 했다. 게다가 활짝, 함박웃음을 짓지 않았나. 아버지는 괜찮을 거였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