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병원은 어디인가
오빠와 나, 아버지 침대를 이동시키는 병원 직원이 일반 병동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것은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침대가 병동으로 들어가자 데스크 뒤에 앉아있던 간호사들이 우르르 일어나 입실 준비를 했다. 우리는 6인실 안쪽 자리로 아버지를 옮겼고 간호사들이 자리를 세팅했다. 간호사 중 한 명이 나를 병실 바깥으로 불러 복도 한 켠에 놓인 컴퓨터에서 입원 수속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녀는 병원에서 일한 지 1년이나 되었을까 싶은 젊은 간호사였다. 나는 아버지의 신상 정보와 사고를 당한 경위(물론 내가 아는 만큼만), 이 병원까지 오게 된 이야기, 이전 병원에서의 검사 결과 등을 되도록 상세히 설명하려 노력했지만 이 젊은 간호사는 아버지의 상황을 입원 수속 매뉴얼 상 정해진 항목 중 어디에 체크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내가 그녀와 같이 뚫어져라 컴퓨터 화면을 함께 보며 '여기에 해당할 것 같아요.' '아, 이 질문에는 이게 답이 되겠네요.'라고 골라주어야 할 정도였다.
지난 시간, 엄마를 통원 혹은 입원시키며 A 병원에서 만났던 간호사들이 떠올랐다. 그 병원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모든 사항에 능숙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환자 보호자를 잘 가이드해주곤 했었는데 이 곳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젊은 연령의 신참 간호사가 많아 보였다. 내가 물어보기 전에는 기존 병원에서의 자료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입원하는 아버지에게 무엇을 준비해 주어야 할지 먼저 알려줄 생각은 하지도 않는 젊은, 아니 어린 간호사와의 입원 수속을 끝내고 나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이로 사람을 차별하는 마음도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나는 스스로를 경계했다.
병실에서는 또 다른 간호사가 아버지에게 이것저것을 묻고 있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생일은요? 어디 살아요? 여기 옆에 보호자가 누군지 아세요? 아드님이에요?"
B병원 중환자실 간호사가 대통령의 이름을 물은 것과 같은 매뉴얼인 듯,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간호사에게 아버지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왜 그런 걸 물어봐! 내가 내 이름도 모르는 줄 알아?"
병실 문 밖에서 입원 절차가 끝나길 기다리던 나는 그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버지, 아직 살아있네.
그런데 그렇게 할 말 다하고, 소리치고, 끙끙 앓는 아버지를 보자 옆 자리 환자들에게 줄 민폐가 걱정이었다. 돈 생각도 하기 전에 먼저 1인실이 있는지 물어봤으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뒤 오빠를 아버지 곁에 남겨두고 집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일 아침 담당의를 만나봐야 알겠지만 이런 식으로 소리치며 떠들어대는 아버지가 일반 병실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면 아무리 프리랜서라도 낮에는 일을 해야 하는 오빠가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간병인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병원 1층 안내 창구에서 간병인 서비스 전화번호가 적힌 전단을 찾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결국, 억제대 하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빠가 문자를 보내왔다.
"바늘이랑 호흡기 뽑고, 소리 지르시고, 어휴, 말도 마라."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우는 모양의 이모티콘만 보낼 뿐이었다. 오빠와 아버지 모두가 걱정되는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오빠는 아버지가 아침 7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고 조용해졌다고 연락을 해왔다. 몇 년 동안 밤낮이 바뀌었던 분이다. 나는 그렇게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발휘되고 있는 아버지의 평소 신체 리듬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 리듬만 바뀔 수 있어도 옆자리 환자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고 오빠도, 혹시 오빠를 대신해 간병인을 구하더라도 덜 고생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버지가 그 리듬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 그리고 깨어있을 때는 힘도 아주 세고 몸을 활발히 움직이려 한다는 것에 안심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상태로 보면 아버지는 나름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믿게 되자 나는 아버지의 퇴원 후를 계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아버지 상태가 안정되고 나면 엄마에 이은 또 다른 10년을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를 열심히 돌보며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아버지 몸이 좀 불편해진 채 퇴원한다고 해도 엄마가 있던 곳 같은 요양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설사 오빠와 내가 돌보지 못한다고 해도 이번엔 정말 좋은 기관 혹은 돌봄인을 구해서 아버지의 마지막까지 열심히 돌보리라 그렇게 마음먹었다.
오빠는 담당 교수가 회진하면서 아버지 상태를 보고 간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내출혈은 녹고 있고 외출혈은 구멍 하나 뚫어서 물을 빼내면 된대. 걱정 말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정말, 이 병원으로 진작에 옮길 걸 그랬다."
나는 오빠의 연락에 천신만고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아버지, 치료할 수 있어요. 그동안 B병원에서 망설인 채 보냈던 시간이 정말 후회스럽지만 그래도 이제 수술하고 다시 건강해져서 우리, 좀 더 같이 놀아요.
아버지, 그 정도로 버텨줘서 너무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저도 이제 앞날만 생각할게요.'
오빠는 담당 교수가 앞으로 며칠 동안은 아버지를 중환자실에 두고 수술 전 면밀히 상태를 체크하자고 했다는 말도 전했다. 그러니 당분간 간병인은 구할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나는 여러모로 잘 되었다는 말을 하며 서둘러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점심 즈음, 급히 병원으로 달려간 것이 오빠에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딱히 내가 할 일도 없이 아버지는 쿨쿨 잘도 잤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은 몇 가지 검사를 더 한 뒤 저녁쯤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잘도 자는 아버지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오빠에게 아버지가 원체 밤낮이 바뀐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러니 옆 사람을 그리도 고생시키지."라고 말하고는 미운 듯 아버지를 흘겨봤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걸, 이렇게 치료할 수 있는 걸, 그동안 그렇게 애태웠다니. 미워도 이렇게 살아있어 주는 게 정말 고마운 그런 순간이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가래 검사를 해야 한다며 작은 통을 하나 주면서 우리 보고 직접 환자를 깨워 가슴을 두드리고는 가래를 뱉도록 해보라고 했다. 나와 오빠는 몇 번 시도했지만 아버지를 잠에서 깨우는 일 조차 쉽지 않았고 입을 다물고 꿈쩍을 안 하는 아버지를 아마추어인 우리가 어쩌지는 못했다. 잘 안 된다고 말하자 조금 후 간호사 두 명이 들어와 함께 '석션'이라는 조치를 했다. 관을 아버지 목 속으로 넣어서 가래를 빼는 작업이었다. 간호사들이 아버지를 부르며 "환자분~ 목 좀 벌려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데 아버지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필사적으로 입을 꽉 다물었다. '내가 이 입을 열어주나 봐라'라고 말하는 듯한 결연한(?) 모습이었다. 사실 목구멍에 무언가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겠나. 나는 아버지의 그런 고집이 이해는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온 몸으로 쌩쌩하게 자기 의지를 발휘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역시나 어려 보이는 간호사 두 명 또한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석션을 마치는 모습이었다. 나는 말 안 듣는 환자를 데리고 있는 것이 간호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좀 더 능숙하게 해 줄 수 있는 이들이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 살아있네~ 하하. 고생했어요. 근데 아버지, 여기 간호사들 의사들 말 잘 들어야 해요. 그래야 아픈 거 낫게 해 주지. 알았죠?"
아버지는 알아 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몇 번 더 앓는 소리를 내더니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얘들아 할아버지, 오~래 사실 것 같아. 아주, 팔 힘이 엄청 세고 고집부리는 것도 예전이랑 똑같애. 옆사람이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완전 기운이 장사야. 하하."
아버지는 그날 저녁 5시경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중환자실에서 지켜보고 별 문제가 없으면 바로 다음날이라도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병원 측에서 알려왔다.
오빠는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고 나도 오랜만에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가족들과 둘러앉았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병원에서 본 아버지 모습을 무슨 무용담이나 되듯 풀어놓았다. 나는 석션 과정에서 입을 꽉 다물고 고집을 피우던 아버지의 얼굴을 흉내까지 내 보이면서 식구들과 웃음을 나눴다.
"10년은 더 사신다. 너끈히 그러실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이들과 함께 웃었다.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몇 분 후, 설거지를 하려 돌아선 나는 식구들 몰래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아, 아버지, 다행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진짜로, 진짜로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라고 혼자 되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