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된 일

아버지의 병원은 어디인가

by 조유리

의사와의 대화는 지지부진했다. 의사는 같은 단어를 반복했고 나는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시간이 꽤 흘렀다. 더 이상 이어나가는 것이 무용하다 여길 만큼 대화가 너덜너덜해졌을 때서야 우리는 말을 마쳤다. 나는 중환자실 안쪽의 아버지 침대 쪽을 잠시 바라봤지만 그리로 가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지 않은 아버지를 당장에는 볼 자신이 없었다.


너털거리는 걸음으로 중환자실 밖으로 나와 벤치에 풀썩 주저앉은 나는, 먹먹해진 목구멍에서 간신히 힘을 내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

"오빠에게 전화 좀. 오라고."

남편은

"형님, 병원으로 좀 빨리 오셔야겠는데요. 네."

라며 짧게 전화를 끊었다.

벤치에 앉은 채로 땅을 향해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나는 이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조용히 흐느끼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서서히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허탈감을 이 조용한 병원 건물 안에서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답답해하던 나는 옆에 앉은 남편의 허벅지를 붙잡고 세게 흔들기도 하고 발을 두어 번, 쿵쿵 내딛기도 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쓸었다.


후회는 다시금 아버지를 일찍 발견하지 못한 순간으로 돌아갔다. 아니 B 병원에서 좀 더 빨리 전원하지 못한 것도 한이 될 것 같았다. 문득, '이 곳에 오지 말걸 그랬나' 싶었다. 면회를 못해도 B병원에서 계속 있었으면 아버지는 그 상태 그대로 괜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자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보려는 나의 머릿속이 마구 뒤엉켰다. 뭐가 문제였을까. 왜 무언가가 계속 내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 드는 걸까. 어쩜 그렇게, 아버지를 살리려는 우리의 노력은 하나 같이 무용해져 버렸을까?




한 시간쯤 후, 우리가 있던 복도 저 끝에서 오빠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 얼굴에 대고 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나는 여전히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아버지 산소포화도가 갑자기 떨어져서.... 눈을 뜰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데..."

오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는 다시 중환자실 면회벨을 누르고 한 번 더 담당 의사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사이, 우리는 아버지 곁으로 갔다. 차마 보기 힘든 마음을 부여잡고 서서히 다가간 침대에서 아버지는 너무도 얌전히 누워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밤낮이 바뀐 원래의 모습이라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 좀 일으켜보라며 난리를 피울 때였다. 그렇게 소리치고 몸을 뒤흔들던 아버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눈은 조용히 감겨있고 인공호흡기를 통과한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아버지! 아버지! 눈 좀 떠보세요!!! 네? 아버지! 왜 이러고 계셔요? 네? 눈 좀 떠보라고요!!!"

오빠는 다른 환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쳤다. 목이 매여 말이 나오지 않은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듬고, 손을 잡았다가, 다시 얼굴을 만졌다.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내려온 의사는 아까 나에게 설명을 하던 젊은 의사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레지던트였다. 조금 더 경험이 많은 의사가 온 것이다. 상황 설명을 해달라는 우리에게, 그는 좀 더 명료하게 설명을 했다.


"저녁 회진 돌 때만 해도 이름도 말씀하시고 움직임도 많으셨어요. 그런데 10시 45분경 간호사가 환자 분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해서 달려왔죠. 바로 필요한 조치를 하고 승압제도 써서 지금은 정상 상태를 유지하고 계시지만, 순간적으로 급격히 떨어진 산소포화도 때문에 환자분 의식을 잃은 상태입니다. 판정은 안 했지만 뇌사라고 보셔도 무방할 정도고, 자극에 반응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다시 회복되시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빠는 여전히 의아하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의사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래도 이미 들은 내용이라고,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그보다도, 의사 뒤쪽에 서 있는 간호사가 더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매우 어려 보이는 그녀는 우리를 지켜보며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나는 문득, '가족을 잃고 상심에 빠진 보호자들을 바라보는 일이 저 사회 초년생 간호사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생각했다. 고맙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긴장할 건 없는데, 싶으니 오히려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다.


의사가 돌아간 후에도 우리는 아버지 곁에서 떠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간호사가 와서 이제 면회를 마쳐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아버지 침대 주위를 돌아 나오면서 다시 한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발을 잡고, 또 얼굴을 바라봤다. 진짜 작별을 나누는 것도, 그렇다고 또 다른 무언가를 기원하는 것도 아닌, 정말 애매한 헤어짐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우리는 중환자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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