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금지
다음날 아침, 원래 아버지의 뇌수술을 하려고 예정되어 있던 담당 교수가 다시 한번 상태를 설명해주겠다고 우리를 불렀다. 그의 설명은 앞 선 의사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진 것에 '호흡부전이 일어났다'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원인은 여전히 알 수 없는데 어느 정도의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에게는 이렇게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는 일이 꽤 자주 생긴다고도 했다. 덧붙여 아버지가 승압제로 버틸 수 있는 것이 최장 2주일 것이고 보내드리는 과정에서 심장 박동이 떨어지거나 혈압이 떨어질 경우 심폐소생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몇 달 전 엄마를 보낸 것이 경험이 되어, 나는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의 말은 연명치료를 얼마나 어떻게 할 것인지 고려해보라는 뜻이었다. 엄마를 보낸 지 100여 일 밖에 안 되어 또다시 그 시간이 왔구나,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교수는 설명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나마 미리 중환자실로 옮겼으니 다행이지, 만약 일반 병실에 계셨다면 보호자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위독한 환자를 일반 병실에 놔두었나'라고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이 부분은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우리는 하필 왜 보호자가 지켜보지 않고 있었던 중환자실에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의아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교수는 아버지를 '어차피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위독한 환자'라고 규정하고, 미리 중환자실에 옮겨놓기를 다행이라 말하는 것이었다. 죽을 만큼 위독했던 환자를 중환자실에 있었기에 살릴 수 있었다면 그 말이 맞겠지만 살게 될 거라 믿었던 환자가 중환자실에 와서 반대의 경우를 맞았는데, 그게 맞는 논리인지 헷갈렸다.
교수에게 이런 설명을 들은 것이 토요일 오전이었고 그 날 하루 동안, 이제 아버지를 엄마 곁으로 빨리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더 오래 우리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아버지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정녕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라도 단 몇 달 전, 친정 엄마가 숨이 끊긴 채 병원에 실려 온 후 5일 동안 연명치료를 하던 기억을 되짚는다면 마음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연명치료를 한 시라도 빨리 끝내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리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써두었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생전에 표시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오빠가 담당 레지던트에게 전화를 걸어,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할지 물었다. 의사는 교수가 다시 출근하는 다음 주 화요일, 면담을 하고 그 절차를 논의해보라고 알려왔다.
다음날인 일요일, 오빠는 새로운 얘기를 꺼냈다.
"혹시 아버지, 의료사고로 제기해보는 건 의미가 없을까? 뇌사 원인이 검사에서 안 나온다고 하니 아무래도 의료사고를 제기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원인규명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그때까지 제발 오빠가 꺼내지 말았음 하던 이야기였다. 그렇게 바랐던 이유는 내 마음속 한 켠에도 자리 잡고 있었지만 건드리고 싶지 않던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얼핏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란 제기를 해도 입증이 어렵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길 확률이 거의 없는 그런 주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입증도 어려운 그 과정을 진행해나가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힘든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엄마에 관한 소송도 이제 시작하는 판에 또다시 괴로운 과정을 시작해야 하나, 나는 망설여졌다. 나는 오빠가 보내온 메시지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며 아무 말을 못 하고 있다가 조심스레 답했다.
"안 그래도 생각은 좀 했는데, 워낙 복잡하다고 들어서 엄두가 안 나네. 엄마 관련 고소장 작성할 때 증거 수집하고 정리하는 게 쉽진 않더라고. 의료 쪽은 더 하지 않을까? 아니면 당시 CCTV라도 보여달랄까? 그런데 병원이라는 곳에서 보호자가 요청한다고 해서 쉽게 CCTV를 보여줄 것 같지는 않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운 길을 시작하는 것도 엄두가 안 났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것도 기꺼이 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가 자연적으로 호흡부전에 이를 수 있는 상태나 연령이었다는 점을 인정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길을 지나는 그 어떤 사람에게 물어봐도 80 된 노인이, 심하게 넘어져 머리를 다쳐 병원에 왔는데 며칠 있다가 호흡부전이 왔다면 '그럴만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아버지가 단 몇 시간 전까지 몸 상태가 활발하고 의식이 있는 것을 확인했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호흡 부전 당시 구체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보호자인 우리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잘못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심이라기보다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저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확신을 갖고 싶었다. 아버지가 자연적으로 호흡이 떨어졌던 것임을.
오빠와 나는 길게 상의하다가 어떻게든 CCTV만은 확인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는 데까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일단, 연명 치료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예정된 이틀 뒤의 교수와의 면담 때 조심스럽게, 이 부분을 물어보자고 합의했다.
피곤하고 멍하고 난감하고 갈 길을 잃은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