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금지
담당 교수의 근무 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였다. 그가 월요일에 근무하지 않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꽤나 불편했다. 일을 겪은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에는 가뜩이나 공휴일이 많았는데 아까운 월요일마저 교수의 휴일이니, 일이 잘 진행이 안 되었다.
연명치료 포기 절차와 CCTV에 대해 물어보기 위한 교수와의 면담도 화요일에 잡혀 있으니, 나는 월요일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해봤다. 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면 뭘 먼저 해야 할까 생각하니 의료 기록지의 발급이 우선인 것 같았다. 의학 용어에 까막눈인 내가 봐서 뭘 알까 싶긴 했지만 아버지 얼굴도 다시 한번 볼 겸, 병원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그대로 누워있었다. 느낌일지 몰라도 주말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런데 벌써 몸이 붓기 시작했다. 엄마도 누워있은지 3일 만에 몸이 퉁퉁 붓길래 빨리 보내주어야겠다는 마음이 급해졌는데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던 거다. 아버지를 언제까지 붙잡아둘 수 있을지, 막막했다.
나는 아버지가 이 C병원에 입원했던 날 이후의 간호기록지, 입원 기록지, 의사 지시서 등 가능한 자료를 모두 발급받아왔다. 물론 입원 기록지의 한글로 쓰인 부분과 간호기록지 말고는 내가 해독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의학사전이라도 찾아가며 투여된 약물 이름 등을 알고 싶었지만 약물과 처치 사항이 담긴 의사 지시서는 시간대 별로 기록되어 있지 않아 무엇이 언제 처치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의사 지시에 관한 내용을 해석하는 것은 일단 포기했다.
간호기록지를 훑어봤다. 적어도 내가 해독한 바로는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입실하고 저녁때까지 어느 정도 괜찮은 상태를 유지했던 것 같았다. 더 이상은 도저히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고민을 하다가 친한 친구에게 주변에 간호사가 없는지 물어봤다. 친구는 사촌동생이 모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아버지에게 호흡부전이 일어난 시간 전후의 간호기록지를 사진 찍어 보냈다. 의심 갈 내용이 없는지 한 번 읽어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조금 후 답이 왔다.
"원래 가래를 뽑아야 하는 분이었던가? 갑자기 가래를 뽑다가 심박수도 떨어지고 산소도 떨어졌네.. suction 후 sudden.. 이 말이 가래 뽑고 갑자기 심박수 40에 산소포화도 40이 되었다는 말이거든. 근데 뭐, 기저질환이 있으셨을 수도 있고... 그런데 이전 차트 보면 호흡곤란 없이 산소포화도 95프로라고 되어있는데 왜 가래 뽑았다고 갑자가 산소포화도가 40으로 떨어지지? 하는 그런 느낌이 들긴 해."
친구는 사촌동생이 보낸 메시지라며 보내왔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다시 한번 기록지를 살폈다.
- 20시 17분 : 호흡곤란 없이 산소포화도 95% 유지 중임.
- 22시 32분 : HR(심장박동수) 40대 후반 측정됨을 DrOOO에게 알림. EKG (심전도) prn 실시할 것을 DrOOO에게 지시 받음.
- 22시 45분 : suction (가래 뽑기) 후 sudden HR 40대, SpO2(산소포화도) 40대.
facial cyanotic color change(얼굴에 청색증) 보임.
O2 mask full ambubagging(산소마스크를 끼우고 산소공급) 함.
intubation(기도삽관) 준비함. 위 사실 DrOOO에게 알림.
갑자기 내 눈에 <suction 후 sudden>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오버랩된 것은 아버지가 일반 병실에 있을 때 가래를 뽑던 모습이었다. 입을 앙 다물고 강하게 저항하던 아버지의 얼굴, 그 입을 벌리면서 두 명의 간호사가 겨우겨우 완수하던 석션. 아버지도 간호사들도 모두 힘겨워보였다.
다시 간호기록지에 집중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면 밤낮이 바뀐 아버지가 활발하게 움직일 때였고 만약 내가 알고 있던 모습으로 아버지가 강한 저항을 했다면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석션이란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석션 후 갑자기' 산소 포화도가 떨어졌다는 기록이 버젓이 적혀 있고 다른 병원 간호사까지 그런 언급을 했으니 나로서는 지금처럼 답답한 심정에서 이런 상상의 나래에 빠져드는 것이 무리도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 기록지에는 아버지의 호흡부전이 일어난 시점 앞뒤로 간호사가 교대된 모습도 보였다. 담당 간호사 이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다시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오빠와 나, 남편이 다시 눈을 뜨지 못하는 아버지를 처음으로 보러 간 때, 의사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간호사의 모습. 가족을 잃은 보호자를 안쓰러워하는 줄 알았던 그녀의 불안한 눈빛에 혹시라도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각성이 찾아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개연성이 생겨버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퍼즐들이 자꾸 맞아가는 것 같은 느낌에 두려워졌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안 되는 거였다. 요양원 부주의로 엄마를 보낸 지 100일 만에 아버지마저 그렇게 보내는 일이 생기면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모든 내 상상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확인하고 싶었다. 상상이 헛된 것임을. 이런 퍼즐 맞추기가 드라마 천국에서 살고 있는 한 40대 여자의 망상이라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의료진의 실수로 아버지의 호흡부전이 생겼다는 근거도 없지만 아니라는 근거도 없었다. 나는 괴로움에 눈을 감았다. 내일, 담당 교수에게 CCTV 영상을 요구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