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아버지

고민은 치열했으나 결과는

by 조유리

마침내 맞이한 월요일, 우린 병원의 사회복지팀을 먼저 찾았다. 사회복지사는 꽤나 조심스러운 태도로 임종을 앞둔 환자의 보호자를 맞았다. 그리고 우선,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아버지가 '사전연명치료 의향서'에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생전에 이 의향서를 써두었는데 사실 아버지와 함께 이 서류를 작성할 때까지만 해도 난 이를 작성한 환자는 의사로부터 소생 불능의 판정을 받고 나면 단 하루도 연명치료를 못하게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벌써 일주일이 넘게 산소호흡기를 끼고 '생리적인 목숨'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최종 떠나는 순간마저 병원 측에서는 정말 의향서를 작성한 것이 맞는지, 그리고 보호자 또한 환자를 보내려는 의사가 확실한지 여러 질문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절차가 복잡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무리 당사자가 의향서를 써두었다고 해도 병원 측이 이를 근거로 바로 연명치료를 중단한다면 그의 최종 죽음에 대한 책임을 병원이 질 수도 있다. 이런 류의 소송이 그동안 몇 번 있어왔기에 병원 측은 연명치료 중단에 그만큼 조심스럽고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임을, 엄마를 떠나보내며 찾아본 몇 가지 자료를 통해 나는 알고 있었다.


사회복지팀과 대화를 끝내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첫 번째 '허락'을 득하고 나니, 담당 주치의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제 주치의에게 말해서 승압제 용량을 줄이거나 투여를 끊어달라고 해야 하는 데 말이다. 무슨 일이 있는건지 오전 내내 연락이 안 되던 주치의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통화가 되었다. 한데 그와 통화를 하는 오빠가 다시 한번 놀라는 얼굴이었다.

"뭐라고요? 그 담당 교수님을 다시 만나서 또 허락을 받으라고요? 교수님은 월요일에 출근 안 하시잖아요. 그리고 내일 화요일은 휴일이에요. 주말 내내 기다렸고 아버지 상태는 계속 안 좋아지는데 그럼 대체 언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겁니까?"

아무리 중대한 결정이라도 그렇지, 몇 명의 사람과 만나 몇 번의 확인 절차를 거쳐야 이미 몸이 붓고 있는 아버지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이 기간에 유독 휴일이 많은 것도 문제였지만 주말 전부터 우리의 생각을 알고 있던 의사들이 이제 와서 이런 절차를 또 지키라 하는 것에 기가 막혔다. 오빠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더니 다시 한번 주치의 레지던트를 설득했다.

"아버님 상태가 너무 안 좋으신 것,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도 이미 오래 시간을 끌었구요. 교수님에게는 전화를 통해 허락받으실 수 없을까요? 내일도 휴일이니 저희는 오늘 꼭 보내드렸으면 합니다. 더 이상은 아버지, 못 견디실 것 같아요."

레지던트는 잠시 기다려보라며 전화를 끊더니 5분쯤 있다가 다시 전화를 해 왔다. 교수에게 유선상 허락을 받았으니 이제 당장 승압제를 끊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무슨.... 오빠와 나는 황당했다. 아버지처럼 이미 소생불능 판정을 받은 환자는 승압제를 끊으면 한 시간 내로 혈압이 떨어져 완전히 떠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좀 멀리 있었으면 어쩌라고, 허락을 받은 즉시 그렇게 확 약을 끊어버리다니. 왜 이렇게 모든 것이 껄끄러운가. 도대체 이건 누구 탓인가. 병원 근처 카페에서 일이 진행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겨 병원으로 달려들어갔다.


예상대로 아버지의 혈압은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엄마를 보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의 한 시간 안에 혈압, 호흡, 산소포화도 등 아버지의 바이탈은 그 숫자가 뚝뚝 떨어졌다.

"미안해요, 아버지... 이렇게 가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이 한 마디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안아준 것 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의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에는, 약 20여 일 동안 이미 닳을 데로 닳아 버린 마음속에 너무도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퉁퉁 부은 채로 이제 세상을 떠나려는 아버지, 온갖 회한과 안타까움,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그를 애틋하게 바라본 지 40여분 쯤 되었을까. 드디어, 모든 숫자가 0을 가리키고 기계에서 삐~ 소리가 났다. 이때만큼은 그 주치의, 재빠르게 내려와 선고를 내렸다.


"2020년 5월 O일 O시 O분, 사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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