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곁에 아버지

고민은 치열했으나 결과는

by 조유리

아버지의 장례식은 입원해있던 그 C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렀다. 엄마를 보냈던 다른 장례식장이 더 깔끔하고 좋았지만 오후 늦게 임종한 아버지를 데리고 다른 먼 곳으로 이동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며칠 전 상황을 전했던 친지들과 달리, 당일에 소식을 듣고 달려온 문상객들은 모두 나를 보며 잔뜩 울상이었다. 단번에 '친정 엄마 잃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버님까지...'라는 그들의 안타까움이 얼굴에서 읽혔다.

그들보다 더 울상이었던 것은 나였다. 엄마 때는 황망한 일을 겪었지만 앞으로 소송에서 잘 싸워 나가겠다는 씩씩함이 문상객을 맞는 내 얼굴에 드러났던 반면, 이번에는 차마 고개도 못 들겠고 손님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할 심정이었다. 엄마 장례에서 그 손님들도 다 봤던, 얼마 전까지 비교적 건강하시던 아버지를 제대로 못 지켰다는 죄책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친지 중에 몇 분은 '무뚝뚝한 아버지가 알고 보니 사랑꾼이었다'라고, '그래서 엄마를 따라 그리도 급하게 가신 것'이라고 위로해주었지만 장례식 내내 나는 참담함을 지워내지 못했다.




몇 개월 전 엄마를 모실 때 계약을 맡았던 장지의 담당자가 얼굴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 아차, 싶었는지 미소를 거두었다. 마스크를 쓰고도 서로를 알아볼 만큼, 우리는 너무 빠른 시간 안에 이곳에 다시 왔다. 식구들은 면구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와 쑥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봉안 과정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왜 이렇게 빨리 데려왔니.'

엄마는 아버지가 빨리 와서 반가울까. 아님 우리를 원망할까. 일단 엄마에게는 사과를 했다.

"이렇게 빨리 아버지를 데려와서 미안해요, 엄마. 하지만 두 분이 계시니 마음은 놓여요. 잘 지내세요."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경찰서에서는 병원에 CCTV 영상이 없다는 황당한 통보를 해왔다. 중환자실 CCTV는 모든 환자를 다 비추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들의 데스크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비추기 위한 용도로, 아버지 침상은 사각지대가 아니었기에 영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CCTV를 보는 것에서 모든 것을 끝내려던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자 더욱 포기가 안 되었다. 이번엔 오빠보다도 내가 더 간절하게, 단 한 번만 피고소인 조사를 해봐 달라고 형사에게 요청했다.

"형사님, 바쁘신 데 죄송합니다. 그 수간호사 때문에 못 만났던 간호사 A요, 저희는 못 만날 테니 형사님이 한 번만 만나주세요. 제가 정말 그 어린 간호사한테 이러기 정말 싫은데요, 그래도 형사님이, 제가 많이 미안해한다고, 그때 정황만 알고 싶어 한다고 전하시면서 물어주세요. 석션과 산소포화도의 순서에 대해서요. 물론, 문제가 있었더라도 제대로 진술 안 할 수도 있다는 것 저희도 압니다. 하지만 혹시 문제가 있어도 고소는 결국 취하할 거라고 전해주세요. 이런 저희 마음, 사실만 알고 싶은 저희 마음, 잘 전달하셔서 조사 한 번만 해주세요. 네?"

나는 이렇게 치근덕대며 사정을 했고 형사는

"그러니까 부검을 하시지 그랬어요."

라고 응수했다. 그랬다. 우린 결국, 차마 아버지의 부검을 감행하지 못했다.

부검을 안 한 것이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아무말도 못하고 서 있는 우리를 향해 형사는 마지못해 조사를 해보겠다고 하더니 다시 며칠 뒤 연락을 해왔다. 피고소인에 대한 불기소 통보와 함께.

"다 조사했고요, 의심하시는 그런 일은 없었던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다 정상대로 조치했다고 진술했고요, 이제 저도 할 만큼 했으니 불기소 처리하겠습니다."




경찰서에 고소장을 내면서 동시에 문의를 해보았던 곳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라는 기관이었다. 2012년에 시행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이 기관은 우리에게 친절한 안내를 해주었지만 일단 CCTV도 확보하지 못하고 경찰에서 불기소 처리가 된 이후에는 우리 쪽에서 추가적인 문의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찰 조사가 끝난 후에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오더니 다시 한번 자신들에게 사건 의뢰를 해보라고 권했다. 진술에 의존하는 경찰 조사와 달리, 자신들은 의무 기록을 살피며 혹시라도 중재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 한 번 더 살펴보겠다는 것이었다.


오빠와 나는 이미 불기소 처리가 된 일에 대해 그 기관에서 먼저 사건 의뢰를 요청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기관 자체가 실적을 올려야 하는 시스템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추측해 봤는데, 만약 그렇다면 사건을 더 적극적으로 살필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관련된 모든 자료와 우리가 왜 병원 처치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의견서를 중재원에 보냈다. 그러나 근 한 달 반 정도 지나 보내온 감정서에는

'병원 측의 처치와 설명에 부적절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움.'

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렇게 허탈한 결과일 거라면 경찰의 불기소 이후 마음을 접으려던 우리에게 왜 재조사를 권했는지 원망스러웠다. 물론, 아버지 일에 대한 가지고 있던 일말의 미련을 포기할, 마지막 근거가 되기는 했지만.


경찰도, 중재원도 우리가 집착했던 '석션 후 갑자기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는 데 대해서는 별 문제를 삼지 않았다. 나는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제가 모든 공신력 있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나니 나와 오빠가 매우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사 과정 중 중재원은 병원 측에게 보호자 측이 제기한 의문에 대한 답변서를 요구하여 받아왔다. 이 또한 우리가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절차상 필요한 단계라고 그들은 말했다. 우리와 대화했던 수간호사가 작성한 듯한 답변서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환자는 집에서 5일간 보호자와 연락이 되지 않은 상태로 혼자 있다가 발견되었으며....'

그 문장에, 칼날에 베인 듯 가슴이 아팠다. 5일은 내가 아버지를 방문한 이후부터 오빠가 아버지를 발견하기까지의 시간이다. 우리가 경찰서에서 그 기간이 5일이었다고 진술했던 것을 듣고 쓴 것 같은데, 죄책감에 빠진 자식이 스스로 그렇게 말하며 한탄한다면 몰라도, 남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정확히 언제 쓰러졌는지 며칠 동안 쓰러져 있었는지는 이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 후 내용은 아버지가 얼마나 나이가 많았는지, 얼마나 기저질환이 심각했는지, 병원으로 실려올 때 얼마나 상태가 심각했었는지를 서술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약간의 간질환과 고혈압이 있었으나 연 2회의 정기 검진으로 어느 정도 관리가 되고 있었다.) 자신이 오해받는 것이 억울한 듯, 보호자가 얼마나 황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지 보라는 듯 아버지에 대해 가차 없이 써 내려간 '심각한 환자'라는 표현에 이번에는 가슴이 숨 막힐 만큼 답답해졌다. 정말 그랬을까? 아버지의 상태는 그렇게 갑자기 '죽어 마땅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을까? 남들에게 다 보이는 그런 모습이 자식인 오빠와 나에게만 안 보였던 것일까?


아버지 일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 엄마에 대한 심정이 요양원에 대한 분노라면, 아버지 일에 대해서는 표현할 수 없는 막막함과 둔탁한 고통이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이다. 이런 마음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아버지를 떠나보내서 너무 죄송스럽다. 절대로 내 마음대로 안 되고 항상 뒤통수를 맞게 되어있는 것이 인생임을 아버지는 뼈저리게 가르쳐 주고 떠나셨다. 그걸 가르쳐주려고 그런 식으로 떠나셨다고, 이제 와서는 그렇게 여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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